[사설] ‘무전재난’ 악순환 언제까지 되풀이할 텐가

입력 2018-11-13 04:01
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사고는 ‘무전재난(無錢災難)’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빈곤층과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재난에 특히 취약해 붙여진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이번 화재 사고로 숨진 희생자 대부분도 일용직 노동자이거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였다.

무전재난의 슬픈 악순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제천, 밀양 화재 참사를 계기로 전국 29만여동 건물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법석을 떨었으나 태산명동서일필이었다.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건물이 여전히 수두룩하다는 사실이 이번 화재로 또 한번 입증됐다.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재에 취약한 오래된 건물과 관련,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인식을 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정부에서 (소급 입법의)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었다.

이후 정부가 그렇게 했나. 구멍이 숭숭 난 법망은 여전하다. 2009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국일고시원처럼 사무실로 등록한 고시원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현재 서울 시내 고시원 5840곳 가운데 1080곳은 2009년 이전에 생긴 것이어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인명 피해가 난 국일고시원이 소방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유다. ‘돈 없고, 빽 없어’ 화를 당한 희생자만 원통할 뿐이다.

지난달 국토교통부 발표를 보면 쪽방이나 여관, 고시원 등 ‘비주택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가 무려 37만 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몇 가구나 소방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법 규정이 없어도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생명과 직결된 안전이다.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 및 화재 예방 시설을 설치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만 좇다 모든 걸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정부도 세제 혜택 등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법적 의무 대상이 아니어도 모든 다중이용시설에 소방 시설 설치를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