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빈민 사역 외길… 이제 암과 싸운다

입력 2018-11-13 00:03
김건호 목사가 지난 7일 자신이 입원해 있는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의 한 병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의 한 병실에서 지난 7일 만난 김건호(51) 목사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있었다. 오랜 시간 빈민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지난 5월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요로로 전이돼 고통이 컸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만난 수많은 이들이 걸리는 암인데 왜 너라고 안 되느냐’고 말씀하시는 듯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86학번으로 빈민사역에 헌신하기 위해 ‘도시빈민선교회’라는 동아리를 조직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산동네였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을 찾아 신양교회 부교역자로 지역 아동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했다. 2011년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진방주 목사)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보호센터 ‘햇살’을 맡았고 2년 뒤에는 센터에서 물러나 노느매기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숙인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자립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김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밥상에 빗대어 설명했다. 노숙인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나눠 먹는 밥을 가장 맛있어한다고 한다. 노느매기 협동조합은 이처럼 함께 힘들여서 생산해 그 몫을 나눈다. 조합은 텃밭을 가꿔 배추를 심었다. 김장을 함께 나누며 이웃들과 공동체를 이뤘다. 김 목사는 “돌아보니 함께 텃밭을 가꾸고 비누를 팔아 번 돈으로 밥상을 나눌 때가 가장 기뻤다”고 했다. 올해부터 조합은 파주에 밭을 구해 옥수수와 콩을 심었다. 양봉으로 꿀 비누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김 목사는 “노숙인 사역을, 가나안에서 자신의 땅을 갖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출애굽 과정과 같다고 생각했다”며 “노숙인 스스로의 의지로 그들의 삶을 바꿔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햇살’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센터에서 매일 조용히 잠을 청하던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목사는 “면회를 가 임종을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다는 걸 알았다”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영혼도 돌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그래서 올해 안에 공동체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출판하려 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 11:6)

김 목사가 마음에 품은 성경 말씀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만날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며 “모두가 어우러지는 평화의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밥상도 빨리 먹는 사람이 천천히 먹는 사람과 속도를 맞출 때 더 따뜻해진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속에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하나님을 경험할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