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알지 못하는 신을 알리다

입력 2018-11-07 00:08

저는 신학을 하기 전 미국의 한 대학원 물리학과로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원에 첫발을 디뎠을 때 눈앞에 보이는 여러 첨단 장비들과 명석한 학생 때문에 기가 많이 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당시 최고의 도시인 아테네에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도 미국 대학원에 들어간 저처럼 기가 죽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베뢰아에서 유대 사람들의 소동을 피해 배를 타고 아테네로 왔습니다. 아테네는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대 위대한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웅장한 신전과 도서관, 그리고 긴 망토를 걸친 채 길을 걷는 철학자들이 많았을 겁니다.

16절에 보면 바울은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둘러봤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우상들이었습니다. 그곳은 사람보다 신이 더 많은 곳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격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울은 이 도시가 영적인 굶주림에 있음을 봤을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전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회당에선 유대인들과 또 유대교로 입문한 이방인들과 토론했고 길거리나 광장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그 중에는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금욕주의자인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과 그의 부활을 전하자 색다른 외국 신에 구미가 당긴 그들은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를 붙들어 아레아바고 법정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사상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2∼31절이 그의 설교내용입니다.

설교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요.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 반응이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비웃고 그의 말을 바로 거절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전해준 메시지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본문은 비그리스도인과 대화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3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복음을 전할 때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헬라의 철학자들에게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적 필요를 봤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자신이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 아무리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아무리 적대적인 것처럼 보여도 인간에겐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들 속에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습니다.

파스칼의 묘사처럼 그들의 마음엔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멍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도 영적인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영적 필요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담대하고 확신 있게, 그러나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둘째, 복음을 전할 때 알아듣게 말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청중이 잘 아는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 그 신이 바로 하나님임을 설득력 있게 전했습니다. 그 나라 시인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냈고 메시지를 개인적으로 적용했습니다. 지나치게 종교적 용어를 삼가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알아듣게 말해야 합니다.

셋째, 전도 후 나타나는 반응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듯 복음을 전하면 거부가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해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 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 밭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전파자의 책임을 다하면 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복음의 씨를 뿌리도록 합시다. 내가 전한 말씀을 누군가가 거부했다고 해도 헛일을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재기 군포 사랑빚는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