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보편적 정서지만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행위는 통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최근 그런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부터 순차적으로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부산 일가족 피살사건, 경남 거제의 폐지 줍는 여성 살인사건 등은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었다.
가해자 대부분은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은 ‘외로운 늑대(lone wolf)’ 유형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마음속에 담아둔 화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 범죄를 촉발시켰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사회적 외톨이’에 대한 실태조사와 스트레스의 극단적 분출을 예방할 국가 차원의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경찰청이 지난해 살인을 저지른 914명의 동기를 조사한 결과 ‘우발적’이 357명(39.1%)으로 가장 많았다. 하루에 1건꼴로 우발적 살인이 일어난 셈이다. 이어 가정불화(76명), 현실불만(44명), 경제적 이익(19명), 보복(8명) 등 순이었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는 2014년 345명, 2015년 344명, 2016년 373명, 2017년 357명으로 매년 300∼400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분노조절장애(습관 및 충동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노조절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는 5986명으로 4년 새 20% 넘게 증가했다.
분노에 의한 범죄 발생이 경쟁과 갈등이 심한 현대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낙오되거나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4일 “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경제 불황 등을 겪을 때 (다른 사람보다) 좌절을 더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결국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폭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개인의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정부나 사회 차원의 관심은 여전히 미흡하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해마다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없어 타인에게 과격한 표현을 하고, 물리적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예방할 국가 차원의 시스템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2년 서울 여의도 흉기 난동사건, 2014년 울산 버스정류장 살인사건, 2016년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등의 가해자들은 조울증이나 우울증 등을 알았고,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경우 가족들이 각별히 신경써야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복지사를 배치하는 등 정부가 나서서 질병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감독해야 하며 동시에 수사기관과 정신보건기관 등에서는 위험성 있는 사람들을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잔혹 범죄’ 대부분 ‘사회적 외톨이’ 소행… ‘분노 관리’ 나서야
입력 2018-11-05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