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4세다. 특별한 사고와 질병이 없는 한 80세 이상까지 산다는 얘기다. 이런데도 장년층과 노년층의 일자리를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23조4573억원) 가운데 55세 이상 연령층의 일자리 창출과 직접 연관된 예산은 1조668억원에 불과하다. 전체 일자리 예산에서 4.5%에 그친다. 정부가 경제생산성을 떠받칠 청년층의 일자리에 눈을 돌리면서 상대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50대 이상을 위한 일자리 예산은 ‘쥐꼬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 취업자 수 증가폭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급락하자 일자리 예산을 22% 늘렸다. 그런데도 정작 임금피크제 지원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삭감했다. 이는 청년일자리 때문이다. 4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9년 예산안 총괄분석’에 따르면 세대별 직접일자리 창출 예산 가운데 청년(50.5%)을 겨냥한 예산이 절반을 차지한다. 이어 중년(37.4%) 노년(9.9%) 장년(2.2%) 순이다. 예산의 상당부분이 청년일자리 창출에 집중된 것이다. 반면 직장에서 은퇴하는 50대 중후반의 장년·노년층을 위한 일자리 예산은 상대적으로 적다.
장년층(55∼64세) 일자리를 창출하는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내년 예산은 1950억원으로 올해보다 526억원(21.1%) 줄었다. 노년층(65세 이상) 일자리 예산은 8718억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1957억원(28.9%) 늘었지만 전체 일자리 예산과 비교하면 미미한 규모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청년일자리 창출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한 나라의 경제생산성을 결정하는 주력이 청년층(15∼34세)과 중년층(35∼54세)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하느라 내년 예산안에서 임금피크제 지원사업을 뺀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유례없는 고령화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장년층과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 예산을 계속 소홀하게 취급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시장에서 은퇴를 준비하는 50, 60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87만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다. 이들이 국가의 복지정책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이어가야만 정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
물론 정부도 내년 예산안에서 50, 60대를 과녁으로 하는 일부 일자리사업을 확대했다. 50세 이상 구직자를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주는 장려금을 늘리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신중년(50, 60대) 일자리’ 2만5000여개를 만들기로 했다. 65세 이상 노년층을 위해 최저임금 및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안정적인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2만개도 새롭게 만들 계획이다.
다만 일자리의 질(質)이 문제다. 통계청이 발표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50대 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1.8%에 이른다. 60세 이상 근로자의 경우 24.9%나 된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확연히 높다. 장년층과 노년층이 질 낮은 일자리인 ‘단기 일자리’에 주로 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정부 입장에서는 장년·노년층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동시에 질도 높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정 정년은 60세인 반면 국민연금 수령 나이는 65세이기 때문에 정부의 임금피크제 지원 제도가 근로자들의 수입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며 “국회에서 정년 자체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전성필 기자 sgjun@kmib.co.kr
내년 일자리 예산 장·노년층 대상은 4.5%에 그쳐
입력 2018-11-04 18:07 수정 2018-11-04 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