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폭증에도 보조금 종료… 기재부 “중장년은 여력 없어” 도입 6만6435개 기업 울상
기업들 지원 염두 노사협상… 일자리 놓고 세대갈등 우려
정부가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청년을 고용하면 임금을 보조해주거나 임금피크 대상자의 임금 일부를 보전해주는 사업은 모두 올해까지만 운영된다.
올해 예산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가 폭증하는데도 사업을 접은 이유는 공교롭게도 ‘청년’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전력투구하다보니 중장년층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년을 이미 연장한 상황에서 임금피크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부작용을 간과했다. 정부의 ‘예산 저울질’이 일자리를 놓고 불거지는 ‘세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에서 임금피크제 지원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0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840억2400만원이었던 지원금을 모두 감액했다. 예산으로 운영하던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사업’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는 올해 말까지만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사업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청년(15∼34세)을 고용하면 1인당 연간 1080만원을 2년 동안 지급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는 임금피크 적용자의 임금 가운데 줄어든 금액의 10∼50%를 보전해주는 사업이다.
당초 정부는 두 사업 중에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3차 고령자 촉진 기본계획(2017∼2022년)’을 발표하면서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 일몰 연장안을 제시했다. 최소 2021년까지 일몰을 늦추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시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민간 기업의 수요가 많다는 점도 ‘사업 존속’에 무게를 실었다. 올해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의 예산은 451억원이다. 1000개 사업장의 1만명가량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잡았지만 3분기가 끝나기도 전에 예산이 바닥을 드러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3분기에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예산이 없다며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올해 집행 가능한 추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용부 소관의 기금 집행 계획을 변경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대 간 상생 고용지원 사업도 비슷하다. 지난달까지 올해 예산 389억2400만원 중 354억5900만원(91.1%)을 썼다. 이 사업은 285개 기업에서 청년 8952명을 고용하는 효과를 거뒀다.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이 6만6435곳(지난해 기준)이나 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두 사업은 곧 사라진다. 기재부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임금피크제 지원 사업을 아예 빼버렸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시급한 만큼 재원을 한 방향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래 올해를 끝으로 일몰되는 제도이고, 예산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정부의 판단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이 끊기면 이미 정년을 늘린 기업 입장에선 당장 인건비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기업 실적이 좋으면 괜찮지만 최근 경기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결국 재직자 임금을 맞추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중견기업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염두에 두고 노사 협상을 타결해 올해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했다. 당장 정부 지원이 끊긴다고 해서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면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청년일자리에 밀려 고령화 대응엔 손 놓은 정부
입력 2018-11-04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