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격 짓밟는 직장 내 갑질 ‘양진호’뿐이겠는가

입력 2018-11-05 04:00
지난주 언론을 통해 폭로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장 내 폭행·갑질 행태는 충격적이다. 회사 게시판에 자신과 관련된 좋지 않은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퇴사한 직원을 불러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하고 무릎을 꿇려 빌게 했다. 회사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석궁으로 살아 있는 닭을 잡게 하고 제대로 하지 못하자 일본도로 닭을 벨 것을 강요했다. 안하무인인 재벌 2, 3세의 일탈을 다룬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엽기적인 행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양진호 갑질’은 우리 사회에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직원들을 괴롭히고, 인격을 짓밟는 갑질이 벌어지는 곳이 적지 않다. 갑질을 당한 직장인을 돕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4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이 단체에 메일로 접수된 제보는 제보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만 225건이었다. 이 단체는 이 가운데 폭행, 준폭행, 악질 폭언, 황당한 잡무 지시 등 정도가 심한 23건을 추려 공개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례들이다. 어떤 주유소 사장은 직원에게 자신의 텃밭 일을 시키고 쉬는 날 3분 늦었다고 폭언과 쌍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회식자리에서 뱀춤을 춘다며 허리띠로 직원을 때리고, 물컵을 던진 사장도 있었다. 명절수당을 받으면 법인 이사장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고 이사장이 해외 출장과 여행 시에는 ‘잘 다녀오시라’는 문자를 보내라고 종용한 회사도 있었다. 여직원이 벗어둔 옷에서 생리대를 꺼내 흔든 직장 상사도 고발됐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사무용 커터칼로 찌를 듯 위협하거나 소주병으로 때리려고 위협한 상사도 있었다. 직장문화가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직장 내 갑질은 여전하다. 반발했다가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피해자의 약점을 악용해 일부 직장에서는 인격모독, 협박 발언, 신체적 폭행 등이 거리낌없이 반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일터는 잠을 자는 시간을 빼면 집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갑질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면 삶이 행복할 수 없다. 직장 내 갑질을 관행으로 넘기지 말고 바로잡아야 한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갑질을 일삼아 온 오너나 상사들이 자성하고 동료를 인격체로 대하는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직장 내 신체적 폭행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지만 폭언이나 괴롭힘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고도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관련 법률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갑질로 인해 고통받는 직장 내 약자들의 눈물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