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수출액이 550억 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무역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월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소비자물가도 13개월 만에 2%대 상승률을 회복했다. 적절한 물가상승률은 소비 활성화를 의미한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보면 침체의 늪에 빠져들던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수출은 ‘반도체 착시효과’가 확연하다. 전체 수출액의 21%가량을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이를 걷어내면 수출은 불안하기만 하다. 물가의 경우 서민의 지갑 사정을 압박하는 국제유가 오름세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제유가 영향을 제외하면 사실상 내수 침체에 가깝다. 물가 상승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전체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2.7% 급증한 549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월 단위로 보면 1956년 무역통계를 작성한 이후 두 번째 최고 수출액이다. 1위 기록은 지난해 9월의 551억2000만 달러다.
누적 수출지표도 눈부시다. 올해 들어 하루 평균 수출액은 22억6000만 달러로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다. 지난달 무역흑자는 65억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무역흑자는 81개월째다.
또한 소비자물가는 소폭 올랐다. 소비자물가 증감은 소비 추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소비가 늘면 자연스레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물가가 상승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올랐다. 지난해 9월(2.1%) 이후 1%대로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이 소폭 오른 것이다.
지표만 갖고 판단하면 수출과 소비에서 모두 긍정 신호가 감지된다. 그런데 피부로 느끼는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표를 끌어올린 주인공들이 되레 위험 요소가 되고 있어서다.
수출에선 ‘반도체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 위험 요소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5억9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1.1%를 차지했다. 수출액에서 반도체 비중은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뒤 꾸준하게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반도체를 뺀 13대 주력산업의 기상도는 정반대다. 조선업은 지난 1∼2월 이후 다시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처럼 현재 수출 구조도 반도체 수출이 악화되면 그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며 “조선업의 빈자리를 반도체가 채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가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고유가’의 그림자가 짙다. 석유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1.8%나 올랐다. 쌀값은 80㎏당 19만원 이상으로 뛰어오르며 ‘밥상 물가’를 끌어올렸다.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하고 외식·물품 구입 등만 포함한 ‘근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9% 오르는 데 그쳤다. 2000년 2월(0.8%) 이후 최저치다. 근원 물가는 실제 소득이 늘어 소비가 증가했을 경우 상승한다. 물가는 올랐지만 서민들의 지갑 사정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수 침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수출·물가 지표는 좋지만, ‘반도체 착시효과’에 ‘고유가 그림자’
입력 2018-11-0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