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과 두 곳의 동아리방, 교회를 오가는 삶이 시작됐다. 처음엔 경계하던 친구들도 내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동아리 회장은 3학년들이 맡았다. 난 두 단체의 회장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인웅아, 니 괜한 일 벌이지 마래이. 결국 싸움만 부추길 끼다.”, “아인 기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 되기 위해선 이 길뿐인 기라.” 공부하고 싶어서 지게 부수고 가출했던 고집 센 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결정은 동아리 아∼들이 할 끼다.” 호언장담한 뒤 기도했다. 떨어지면 망신이었다. 화합시키려다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선거가 시작됐다. 개표 결과 두 단체 모두 날 회장으로 선택했다. 인사말이 잊히질 않는다. “교단이 분열됐심더. 마음이 아픔니더.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어른들 맹키로 싸워서야 되겠는교. 안됩니더. 우린 하나가 되입시더.”
나는 연합모임을 자주 가졌다. 여기저기서 ‘이상한 놈’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선배들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각자의 정체성이 있는데 그걸 깼다는 지적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원래 하나였는데 함께 만나 기도하고 찬양하고 나라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냐고 항변했다. 사실 내 말이 맞았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아니라면 누구와 하나란 말인가. 두 단체의 회장이 한 명이다보니 교류가 많아졌다. CCC 방에 가면 KSCF 회원들이 있는 식이었다. 그 전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우리는 두 단체의 연합 수련회에도 함께 갔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됐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때 경험은 내게 ‘화해’ ‘연합’ ‘일치’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가르쳐줬다. 훗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의 원형이 경북대에서의 경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나의 목회가 화해와 화합에 맞춰진 것도 모두 이 시절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