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패한 경제정책 고수하겠다는 시정연설

입력 2018-11-02 04:00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는 좋은 얘기가 많다.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이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사는 나라 등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른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가 공정과 평등만 얘기하고 있을 상황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실업과 양극화, 자영업자 몰락을 비롯해 온갖 경제지표가 추락하고 있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민생경제 현장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다.

함께 잘사는 나라가 아니고 함께 못사는 나라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경제 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고령층 등 힘겨운 분도 생겼지만 함께 잘살자는 노력과 정책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교체돼야 할 청와대 경제팀이 써준 원고여서 그런지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여전히 외면하는 내용이다.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실용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라는 지적에 대해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누가 불평등하자고 했나.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나. 경제가 이렇게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도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강변할 것인가. 이게 아니라면 우선은 실용적인 정책으로 경제부터 살리고 볼 일이다. 시정연설에서 추락하는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비전과 대책을 제시했어야 했다.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규제개혁 등 투자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연설이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정연설에서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육성시킬 수 있는 좀 더 진전되고 구체적인 비전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기를 살려주고 경제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들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이 결코 아니다. 시장 논리보다는 가치와 철학을 중심으로 경제 운용을 하다보면 자칫 실용보다는 이념에 치우치기 쉽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비롯해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경제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경제 정책을 운용해 이런 시각을 불식시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