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을 말할 때면 흔히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거론된다. 교회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복음의 진정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위기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엔 종교 자체에 대한 거부가 숨어있다. 인간 이성과 과학의 신봉으로 탈종교 행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대응전략도 간단치 않다. 뜨거운 영성과 차가운 지성, 그리고 실천적 삶 없는 복음의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독교 2000년 역사를 씨줄과 날줄처럼 오갔던 철학과 신학의 역사를 아는 게 해결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이자 기독교 철학자인 존 프레임 리폼드신학교 교수가 펴낸 이 책은 기독교사상 입문서다. 서양철학과 신학의 역사를 동시에 다루면서 두 학문이 구분은 되지만 실상은 서로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철학을 ‘세계관을 확립하고 옹호하려는 훈련된 시도’로, 신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신학은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철학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독교인들이 철학을 공부하면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을 파악할 수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설파한다.
그는 서양철학과 신학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논증한다. 논증의 근거는 ‘하나님의 주재권’이란 개념이다. 주재권이란 하나님이 주님이시며 피조물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이다. 주재권의 본질을 하나님의 통제와 권위, 임재로 요약한다.
이를테면 헬라철학은 인격적 절대자에 의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헬라철학자들은 이성의 자율성을 내세웠다. 그들의 목표는 불합리한 세계에서 자율적 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헬라철학은 이성이 절대적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궁극적 대안은 절대적 인격체를 믿는 성경적 유신론 뿐”이라고 분석했다.
저자는 중세와 이후 신학자들이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대폭 수용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이 아닌 자율적 이성에 다시 종속됐다고 지적했다. 인간 이성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새로운 세속주의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초기 기독교 철학은 사도의 영향을 받은 ‘속사도’ 혹은 교부들에 의해 확립됐다. 교회사를 다룬 저작들에서는 이들의 삶과 업적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저자는 주재권을 근거로 장단점을 솔직하게 분석한다. 변증가 중심의 당시 기독교 사상가들이 유대인과 로마인, 헬라철학자와 이단에 맞서 기독교를 변호하고 신학 체계를 세운 것은 공적이지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신학을 지성적으로 모나지 않게 만들어 믿기 쉽게 하려는 시도가 기독교 변증가들과 철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라고 지적한다. 인간에겐 진리를 억누르는 부패한 본성이 있는데 변증은 이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지는 것이 성경적 원리라고 상기시킨다.
프레임 교수는 지금까지의 철학과 신학 사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재권에 미치지 못한 시도들이었다고 정리하면서 인간 사고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영적 싸움을 하라고 도전한다. 특히 하나님의 주재권을 확립한 기독교 철학자들이 시대가 갈수록 증가했는데 18∼19세기보다 20세기에 더 많이 출현했다고 봤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이 일으키는 ‘사상운동’으로 해석했다. 아브라함 카이퍼를 비롯해 고든 클라크, 코넬리우스 반틸, 앨빈 플랜팅가, 에스더 라이트캡 미크, 베른 포이트레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소개했다. 반틸의 경우 자신의 학문 활동을 통해 성경의 전제를 부인하는 사상 체계들이 자기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상과 지성의 영역에서 손을 놓지 말기를 당부한다. 철학과 신학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GPS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하나님의 주재권’으로 본 ‘신학+철학’史
입력 2018-11-02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