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공전하는 가운데 한·미 간 남북 관계 개선 속도를 둘러싼 이견이 적지 않게 노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촉구했고, 통일부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 이어 남북철도연결 공동조사에 대해서도 제재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백악관과 의회 인사들을 만나고 온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대북행보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만이 우려할 수준이라고 전한다.
미 재무부가 대북제재 준수를 강조하기 위해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내 6개 시중은행 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한 것은 미국의 의도와 달리 대북제재 완화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 주한 미국 대사관도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기업 총수가 방북한 4대 대기업에 직접 연락, 대북 경제협력 사업 추진 상황을 최근 문의했다고 한다.
이러한 남북 관계 개선 속도를 둘러싼 양국의 이견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하강이 본격화하고 증시 불안이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다. 미 정부가 대북제재 위반을 이유로 국내 은행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추진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아 최근 은행주들이 급락한 게 대표적이다. 결국 금융위원회가 31일 “풍문의 유포과정을 조사해 제재할 계획”이라며 긴급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 정부가 비핵화와 대북제재 문제에서 긴밀히 공조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키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이 모임은 한·미 간 비핵화·대북제재·남북협력 등을 논의하는데 스티브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그의 한국 측 카운터파트인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이 주도한다고 한다. 이로써 지난 28일 방한한 뒤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을 모두 만나는 광폭 행보를 보인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 목적이 한국 정부의 과속을 막기 위함이었음이 확인됐다.
워킹그룹이 양국 정부 간 소통의 창이 돼 미국에서 남북 관계 과속 논란이 나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과잉 간섭’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피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워킹그룹이 작동되더라도 양국 간 이견이 불거져 삐걱거릴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미국의 의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진행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 먼저 대북제재를 완화하자는 문 대통령의 주장은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긴밀히 미국과 조율하면서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사설] 한·미 워킹그룹 계기로 파열음 더는 없어야
입력 2018-11-0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