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하는 대법원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법부에서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성폭행 혐의자 무죄 선고에 피해자 부부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의 상고심에서 1·2심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강간 혐의를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내용은 수사기관부터 법원 재판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라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 박씨의 강간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 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지난 4월 판결에서도 성폭력 2차 피해를 우려하는 피해자의 입장을 유념해야 한다며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다.
박씨는 2014년 충남의 한 모텔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해칠 것처럼 협박해 친구 아내인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폭력조직원인 박씨는 조직 후배들을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폭행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해 박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간 혐의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인데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2심도 성폭행 혐의를 무죄라고 봤다. A씨 부부는 1심 판결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 3월 함께 목숨을 끊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
피해자 부부 목숨 끊은 뒤에야… 대법원, 성폭행 유죄 취지 판단
입력 2018-11-01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