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성] 묵상의 숲

입력 2018-11-02 00:03

“다시 주님 앞에 머뭇거리고 머뭇거리다가/ 저의 더럽혀진 발을 내려놓습니다…염치없이 염치없이…”(‘또 염치없이’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쓸쓸했던/ 그분의 눈길을 바라보며/ 그때 그분께만 들리도록/ 가만히 속삭여 부르리라/ 고독이라고”(‘그때, 부를 이름 하나’ 중에서)

문학을 통해 크리스천들에게 영적인 깨달음을 전해 온 소설가 정연희(82) 작가의 세 번째 묵상 시집이다.

‘묵상의 숲’은 창조주에게서 오는 위로와 기쁨을 노래한다. 깊은 묵상과 내면의 성찰로 건져 올린 84편의 작품이 담겼다.

정 작가는 “이 시집은 침묵하는 숲에 흠집 낸 언어의 부스러기이며 진리를 거스른 반역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학이 고뇌의 무게만큼 자기값을 지니는 것이라면, 이 시집은 문학의 소산이라기보다 신앙의 무릎 꿇음이며 어린아이가 익히기 시작한 기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저서에서 자신의 글은 ‘목숨의 무늬’라고 고백한다. “더없이 더할 수 없이 아프고 무엇보다 어리석었던 한목숨의 무늬입니다. 진솔한 고백을 드리기 위한 고독한 작업, 정직한 삶의 그 영토를 지키기 위해 때로 목숨 저미듯 아프고 두렵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에 문학이란 독특한 무늬를 그려줬다고 생각한다. 그는 은혜받기 이전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이전에 갖지 못했던 문학의 조화를 찾았다. 영혼의 씨눈이 벗겨지자 죄가 보였고 생명의 존귀함이 보였다. 창조의 아름다움이 보였으며 이웃이 보였다. 그의 기도의 골방은 눈물의 샘이 되기도 하고 약속의 꽃향기가 되기도 했다. 골방은 말씀을 듣는 귀가 됐고, 새로운 언어의 기도가 됐다.

그는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파류상’으로 등단한 후 장편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난지도’ ‘순교자 주기철’ 등을 발표했다.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 시집으로 ‘외로우리’ ‘빈들로 가거라’ 등이 있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