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봉합 1년… 한·중, 손은 잡았지만 아직 냉랭
입력 2018-11-03 04:02
한국과 중국은 지난해 10월 31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이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불거진 양국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사드 갈등을 일단 덮었다. 2016년 7월 한·미의 사드 배치 발표로 냉각됐던 한·중 관계가 1년3개월여 만에 복원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한·중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복원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경제 이슈들이 있고, 사드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중 간 갈등이 봉합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진전은 정부 간 협의 채널이 정상화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후 한정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등 중국 고위급 인사들의 방한이 이뤄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여러 차례 회담을 가졌다. 사드 갈등 봉합 직후인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났던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달 APEC 정상회의에서도 만나 회담할 것으로 보인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과 중국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고 나서 어느 정도 사드 문제는 일단락된 것 같다”며 “사드를 설치한 게 북한 핵 문제 때문이었는데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북핵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면서 사드 문제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속에 평화체제가 형성된다면 한·중 관계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우리 경제계 피해 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롯데마트 중국 철수, 선양 롯데월드 건설 중단, 중국의 한국산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제외, 중국인 단체관광객 허용 문제, 한류 콘텐츠 중국 수출 재개를 사드 보복 관련 5가지 핵심 경제 이슈로 보고 있다.
이 중 가장 체감도가 높은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베이징시, 산둥성 등 6개 지역에서만 단체관광 비자 발급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16년 806만명에 달했다가, 사드 갈등이 첨예해진 지난해 416만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갈등이 봉합된 뒤 올해 들어 9월까지는 349만명으로 완만히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정부는 동남아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이 사드 갈등 이전 중국인 관광객 수의 절반 수준까지 늘어 과거처럼 중국인 관광객 수치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는다는 분위기다.
사드 부지(성주골프장)를 제공한 일로 중국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은 롯데그룹의 롯데마트 철수 문제는 대다수 점포의 매각 절차가 완료되는 등 마무리 수순이다.
하지만 나머지 경제 이슈들은 중국이 여전히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 보복은 시 주석이 직접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너무 빠른 시기에 양국 관계가 회복되면 시 주석의 정치적 체면이 손상될 수 있어 시간 조절이 필요한 문제”라며 “중국이 조금씩 관계를 개선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진전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드가 엄연히 배치돼 있는 현 상황에서 양국 갈등 봉합은 표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사드 갈등 봉합은 표면적인 현상이지 본질적인 것은 전혀 해결된 게 없다”며 “중국은 사드 문제로 한국에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때렸다. 최근 단체관광객이 오고는 있지만 롯데면세점은 가지 않는 등 보복 의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다만 강 교수는 “최근 시 주석의 측근인 리훙중 정치국 위원 겸 톈진시 당서기가 방한한 것은 분명히 한·중 교류에 긍정적인 신호탄”이라며 “중국 측이 주는 교류 활성화 시그널을 우리가 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쌓아온 양국 국민의 우호적 태도가 사드 갈등으로 크게 손상된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정부 간 갈등은 봉합됐지만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사드 갈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 민간 여론이 크게 악화됐고 중국 내 여론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라며 “후유증이 워낙 커 우호적인 인식이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드 갈등 봉합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본질적인 한·중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 교수는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10주년째를 맞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논의를 전혀 못해왔다”며 “수교 이후 북한 요인 등을 안고 양국이 계속 관계를 이어왔는데 결국에는 사드라는 촉발제로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드 갈등의 봉합에 그치지 말고 양국 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