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락을 거듭하는 주식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증시 안정화를 위해 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비웃듯 코스피지수는 2000선 아래로 추락했다. 이달 들어서만 코스피·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은 30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외국인투자자 자금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증시 급락에 개인투자자들도 ‘투매(손실을 본 상태에서 마구 팔아버리는 현상)’에 나서고 있다.
금융 당국은 29일 증시 개장 전인 오전 8시30분 긴급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급격하게 무너지는 투자심리를 붙잡으려는 의도였다.
금융 당국은 글로벌 증시 하락의 직접 원인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등 ‘글로벌 긴축’을 꼽았다. 각국 중앙은행의 ‘돈줄 죄기’로 증시에서 국제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머니무브(money move)’가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악재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양호한 시각은 유지했다. 여전히 2% 후반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고, 경상수지가 78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수출도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금융 당국은 한국 증시가 해외 증시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있어서 앞으로 하락 폭도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부위원장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며 “이번 조정국면이 한국 증시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 당국은 한국거래소 등 증권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5000억원 규모의 ‘증시안정 자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 재정과 무관한 자금이다. 이날 금융투자협회도 증권사 사장단 간담회를 열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현재의 한국 증시 흐름이 길지 않은 시간 내 변화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포에 얼어붙은 투자심리는 쉽게 녹지 않았다. 코스피지수는 오전 중 2040선을 넘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 하락폭을 급격히 키웠다. 이달 들어 야금야금 주식 저가매수에 나섰던 개미(개인투자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대신증권 이경민 투자전략팀장은 “신용대출로 주식을 샀던 개인들의 ‘반대매물’이 쏟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깡통계좌’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개인들이 증권사 대출 등으로 주식을 사고 일정기간 안에 갚지 못할 수준이 되면 증권사들이 주식을 강제로 매도한다. 반대매매가 쏟아지면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시장의 반대매매 규모(호가 기준)는 이달 들어 4000억여원으로 집계된다. 지난달(939억원)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달 코스피가 하락할 때만 해도 2200∼2000선까지 차례로 지지선을 낮춰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코스피는 지난 24일 2100선이 붕괴된 후 고작 3거래일 만에 2000선마저 내줬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에는 공감한다. 코스피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 25일 기준으로 0.86배에 불과하다. 기업의 자산을 다 팔고 청산했을 때 가치보다도 주가가 낮다는 뜻이다. 홍콩(1.19배) 중국(1.4배) 일본(1.69배) 대만(1.52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다.
다만 가격이 싸다는 것을 빼면 한국 증시에 별다른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22일 낸 보고서에서 “반도체 경기 둔화 우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등 주가 상승의 촉매가 부족하다”며 “한국 증시가 한동안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 경기에 연관성이 높은 장치산업”이라며 “내수가 안 좋은데다가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 수출이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5000억원 규모 증시 안정화 자금 가동 등 정부 대책은 근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이 중 3000억원은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이미 예고됐었던 내용이다. 유 팀장은 “과거와 달리 정부가 직접 증시를 위해 할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연기금도 국내 주식에 충분히 많이 투자한 상태에서 쉽게 비중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추풍낙엽 증시, 각국 돈줄 죄기에 ‘머니 무브’, 정부 대책도 안 먹혔다
입력 2018-10-29 18:19 수정 2018-10-29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