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직접 낸 유치원비, 원장 쌈짓돈 될라

입력 2018-10-30 04:03

이른바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향후 국고보조금을 부정사용하는 유치원에 대한 처벌 근거가 풍부해진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원비’다. 특별활동비, 방과 후 과정 등으로 추가되는 원비는 유치원 재량으로 사용될 소지가 여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비도 국고보조금과 다를 바 없어 처벌대상이 된다는 해석도 있는 반면 “유치원의 사유재산 재량권은 어느 정도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인정의 오빛나라 변호사는 2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국고보조금은 교육에 사용된다는 목적이 분명하게 있는 돈이지만 원비는 구체적으로 항목을 특정하지 않으면 (원장 등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봤다. 권솔지 변호사도 “원비는 보조금과 별개의 성격이라 항목이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유용할 우려가 여전히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는 “부모가 내는 원비도 국고보조금과 합산되기 때문에 별도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리는 없다”며 “사적으로 유용할 경우 모두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처벌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지원금을 ‘국고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유치원도 교비회계를 교육 목적 외 부정 사용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되면 원비 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비리행태가 드러난 유치원 처벌도 문제다. 박 의원이 발의한 3법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다. 형법상 횡령죄 성립은 유치원이 법인화돼야 가능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영춘 변호사는 “국고보조금으로 바뀌더라도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이 되기 때문에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립 중·고등학교처럼 법인화가 돼야만 횡령죄 성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횡령죄 적용이 어려워 최근에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어렵다. 김남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원비를 낼 때 이 돈을 어떻게 쓸 건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으면 ‘기망 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울산지법은 경남 양산에서 사립유치원을 운영하던 A씨가 사기죄로 기소당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유아음악 프로그램 제공업체와 짜고 매달 교육비로 지급한 80만원 중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8회에 걸쳐 1010만2500원의 이득을 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치원의 회계를 불투명하게 운영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학부모를 기망해 교육비를 편취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증명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제주지법은 특별활동 교재와 강사 수당을 고의로 과다 계상해 부모들로부터 받은 어린이집 원장 C씨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C씨는 특별활동 업체와 부모들 몰래 이면계약을 맺고 특활비의 3분의 1을 다시 돌려받는 식으로 1019만5000원의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를 기망 행위라고 봤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법인 혜명의 손정혜 변호사는 “그동안 재판에서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사유재산 행사권이 중시돼왔다”며 “형사보다는 민사상의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불법성을 인정받는 게 더 쉽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