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번째 개정 앞둔 ‘난수표’ 주택청약제도, 부적격 당첨자 속출

입력 2018-10-29 18:55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 통로인 주택청약제도가 139번째 개정을 앞두고 있다. 제도가 만들어지고 139번째 바뀌면서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무주택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규정이 점점 촘촘해지면서 ‘난수표’로 변하고 있다.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실수는 오롯이 신청자가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다 점점 주택청약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는 1주택 보유자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29일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지만 이후 부적격자 판정을 받은 사람은 2만1807명에 이른다. 공급물량(23만1404가구)을 감안하면 당첨자 10명 중 1명(9.4%)이 부적격 당첨자인 셈이다.

부적격 당첨자가 왜 이렇게 많은지는 청약을 한번이라도 신청해 봤다면 알 수 있다. 청약 신청을 하려면 복잡다단한 관문을 거쳐야 한다. 자신이 1순위인지, 2순위인지 확인하는 첫 단계부터 난관이다. 1순위가 되려면 세대주여야 하고, 가입한 지 2년이 넘은 청약통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5년 이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실도 없어야 한다.

여기에서 실수가 발생한다. 최근 5년간 당첨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1순위로 청약했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례는 지난해에만 1150건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도 8월까지 358명이 이런 사유로 부적격 당첨자가 됐다.

몇 순위인지 판별하는 절차를 무사히 거쳤어도 스스로 가점을 산정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가점은 무주택기간, 부양가족 수, 주택청약통장 저축기간 점수를 합산해 매긴다. 여간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 아니다. 예컨대 무주택기간을 산정할 때 연령 기준은 30세다. 이때부터 집이 없었던 기간만큼 점수가 붙는다. 그런데 30세 이전에 결혼을 했다면 혼인 시점부터 무주택기간을 산정해야 한다. 9·13 부동산대책이 발표되면서 이 기준은 더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과거에는 무주택자로 간주됐던 분양권 소지자도 유주택자로 분류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이 입법예고됐기 때문이다.

부양가족 가점 산정도 만만찮다. 지금까지 60세 이상 직계 존속이 3년 이상 세대주와 함께 살면 부양가족 점수가 부여돼 왔다. 하지만 입법예고를 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직계 존속이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부양가족 점수에서 빠진다. 부모 집에서 같이 살면서 부양가족 점수를 받는 ‘금수저 청약’을 방지하려는 조치인데, 신청자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특별공급’을 신청하려면 머리가 더 아프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경우 소득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부부의 월평균 소득이 지난해 근로자 평균소득의 120%(맞벌이는 130%)보다 적어야 한다. 이때 ‘소득’이 세금을 내기 전인지, 세금을 내고 난 후인지, 보너스로 받은 급여는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쉽게 알기 힘들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서 ‘질문·응답(Q&A) 자료집’을 내려받는 순간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자료집 양만 128쪽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점을 잘못 매겨 부적격 당첨자가 되는 일이 속출한다. 최근 5년간 청약가점 기입 오류로 부적격자가 된 사례는 6만4651건이다. 전체 부적격 당첨 사유 중 46.3%나 된다.

또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9·13 대책에서 수도권 공공택지와 투기과열지구 내 85㎡ 이상 민영주택 추첨제 물량의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키로 했다. 1주택자 입장에선 그만큼 당첨 기회가 줄어든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더 까다로워진다. 신혼기간 중 주택을 처분한 적이 있는 부부는 특별공급에서 제외된다. 이에 국토부 입법예고 홈페이지에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강화 방침을 철회하라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건국대 고성수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실거주 목적의 1주택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함께 고려해서 세밀하게 제도를 짰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국토부 의뢰를 받아 ‘주택공급의 투명성 및 편의성 제고 등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에 착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세청 연말정산처럼 행정정보를 이용해 가점 계산 등을 자동으로 해 주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지 타진해 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처 협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실제 적용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다만 정부는 ‘1주택자 불만’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1주택자 혜택을 다시 늘리면 무주택자가 반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