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외풍에 또 털썩… 코스피 2000도 위태위태

입력 2018-10-26 04:02
공포가 금융시장을 삼켰다. 무역전쟁, 글로벌 긴축, 경기 불안감이 시장을 짓누르면서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머니무브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코스피의 시계는 21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 ‘최후 보루’였던 2100선이 깨진지 하루 만에 다시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우며 20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증시가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는 약세장에 돌입하면서 다시 ‘박스피’에 갇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에 개인투자자 투매까지 더해지면서 ‘증시 패닉(공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25일 코스피지수는 1.63% 하락한 2063.30에 마감했다. 직전 최고점이었던 2598.19(1월 29일)와 비교하면 20% 이상 추락했다. 통상 지수가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지면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다. 외국인투자자는 3479억원을 팔면서 6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코스닥지수도 1.78% 내린 686.84로 거래를 마쳤다.

‘패닉의 10월’을 불러온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글로벌 긴축’ ‘무역전쟁’ ‘대내외 경기 불안’을 3대 악재로 꼽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꾸준한 ‘긴축’ 의지를 드러내며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게 신호탄이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글로벌 증시가 타격을 입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시점과 맞물려 중국 증시는 3% 이상 급락하는 ‘블랙 먼데이’를 맞기도 했다.

여기에 ‘강한 달러’ 흐름이 잦아들지 않으면서 신흥국의 자금이탈 우려가 뚜렷해지고 있다. 환율 고점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왔지만 시장의 전망은 빗나갔다. 주요국 통화가 달러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유로화는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리스크를 해소하면 다시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됐지만 긴 진통을 겪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5.7원 오른 1138원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 강세는 신흥국 통화 약세를 유발하고,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유출을 부른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거세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이달에만 3조원대에 이르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유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을 정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1∼24일 한국 국채를 5500억여원 순매도했다. 지난 9월 2조원 순매수, 지난 8월 7600억원 순매수와 정반대 흐름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만기 상환이 돌아온 채권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상장채권 시장에서 지난달 외국인 자금 1조9000억여원이 빠져나갔다. 9개월 만의 순유출이었다. 다만 채권시장에서 ‘셀 코리아’가 시작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대신증권 공동락 연구원은 “통상의 거래 관행을 볼 때 채권은 몇 개월에 걸쳐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는 모습도 증시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중(對中) 관세를 낮출 생각이 없다고 언급하면서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두 나라가 극적 타협할 가능성도 낮아졌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어느 한쪽이 깔끔하게 손을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역마찰이 길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내외 경기의 둔화세도 시장을 억누른다. 한국 경제는 이미 경기 침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경제는 이미 둔화 사이클에 접어들었다”며 “경기 둔화 사이클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 포인트 낮춘 3.7%로 추산했다.

패닉에 빠진 증시를 살려낼 ‘방아쇠’는 있을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거나, 미·중 무역전쟁의 강도가 낮아지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본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자본유출 우려가 있었던 2016년에 위기를 탈출하게 해줬던 건 연준의 스탠스 변화였다”고 말했다. 연준이 긴축 정책을 완화하면서 금융시장에 햇빛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연구원은 “G20 회의에 큰 기대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약세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수출을 떠받치는 반도체가 내리막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변 센터장은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인데 지금은 온통 불확실 투성이”라며 “지수가 계속 떨어지지 않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비슷하게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나성원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