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학부모들 “당장 애 맡겨야 하는데, 정부는 중장기 대책”

입력 2018-10-25 18:23

“당장 내일모레 유치원에 애를 맡겨야 하는데 중장기 대책만 내놓으면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요.”

비리 사립유치원 사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25일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을 내놨지만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5살 아이를 키우는 이모(30)씨는 “엄마들에겐 피부로 와 닿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며 “지금도 많은 사립유치원들이 원아모집을 미루면서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데 정부는 강경대응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엄마들은 갑을병정에서 ‘을’도 아닌 ‘정’이 돼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정이 이날 발표한 국공립유치원 40% 취원율 조기 달성과 에듀파인(국가회계관리시스템) 의무도입 등은 대부분 중장기 대책이다.

경기도 동탄에서 아이를 키우는 김모(37)씨는 “아이가 내년에 4∼5세가 되는 엄마들은 당장 다음 달에 원서를 써야 하는데 정부 대책은 근원적일 뿐 세부 계획이 없다”며 “‘지금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 비리를 저지른 곳에 믿고 보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탄은 대부분이 비리유치원이라 엄마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다”며 “대책을 기다렸는데 달라진 게 없다. 공동육아 같은 걸 더 알아봐야 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장성훈(36) 동탄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단체카톡방에는 ‘이것도 대책이냐’라고 묻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이번에 포함된 방안 대부분은 예전부터 나왔지만 실행이 안 됐던 것들이라 또 흐지부지될 수 있다. 좀 더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는 “집단휴업 등에 강경대응하는 것과 국공립유치원 확충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장감사나 원장 월급 상한제 및 부모부담금 상한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감사가 없으면 서류만 완벽히 조작해 비리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며 “전수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원장들이 불법적으로 1억∼2억원을 월급으로 가져가는 곳도 적지 않은데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집단반발 움직임을 암시하자 학부모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5살 아이를 둔 한 맘카페 회원은 “무료로 봐준 것도 아니면서 생색내니 화가 난다”며 “유치원들이 ‘우리 아니면 (아이) 보낼 데도 없잖아’ 식의 배짱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당장 다음 달이면 내년 입학을 위한 원서접수를 해야 하는데 교육청에 가서 또 집회를 해야 하나”라고 우려했다.

아직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학부모 일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살 아이를 둔 장모(29)씨는 “비리 유치원 명단을 바로 확인하고 참담했다”며 “최대한 비교적 투명한 국공립유치원에 보내고 싶다. 국공립 비율을 높인다는 정부 정책은 환영”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