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29일] 응답하는 교회

입력 2018-10-29 00:03

찬송 : ‘기도하는 이 시간’ 361장(통 48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하박국 2장 1∼4절


말씀 : 하박국은 질문하는 선지자입니다. 구약의 하박국은 화가 난 상태에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 때까지리이까?”(합 1:2)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도발적인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하박국의 질문은 불의한 것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이방 사람을 불러오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박국은 더욱 화가 났습니다. “어찌하여 잠잠하시나이까. 옳으니이까”라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닦달합니다.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높은 성루에 올라 하나님을 몰아세웁니다. 화난 하박국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세 번째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절) 우리의 질문은 우리의 수준 만큼입니다. 그리고 질문의 수준만큼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나의 수준을 뛰어넘는 질문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것은 결국 수준만큼 귀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만 잘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요. 우리가 모두 알듯 그들은 더욱 곤경에 빠질 뿐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선택해야 합니다. 아니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질문보다 하나님의 응답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네가 어디있느냐?”(창 3:9)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먼저 질문하셨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회피의 역사입니다. 피하고 숨으며 탓하고 핑계를 댑니다. 정직한 대답을 한 사람은 역사상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십자가 위의 한 사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대답하실 때까지 말입니다. 지난 세월 수많은 질문은 사실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 역공세를 펼치던 잔꾀들이었습니다.

욥은 어떻습니까. 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과 논쟁하던 욥을 따로 데리고 뜬금없이 창조세계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줄 때 욥은 수많은 논쟁과 질문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욥 42:6) 합니다. 우리의 질문이 우리 보기에는 언제나 옳은 것 같아도 그것은 나의 한계 안에서의 질문이었습니다. 자기만족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이의 세계를 만나는 우리 가정이 됩시다. 질문보다 먼저 응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비겁한 우리들이 멋진 예수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만히 있으면 다시 교만한 마음에 빠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주님 환영하오니 우리를 떠나지 마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태웅 목사 (충주 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