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의 ‘프로비던스 커뮤니티센터’ 1층에 마련된 중간선거 사전투표소. 11월 6일(현지시간) 중간선거를 앞두고 사전투표가 한창인 버지니아주 사전투표 현장을 24일 찾았다. 평일 낮시간이었지만 투표소에는 많은 유권자들이 있었다. 줄을 서서 투표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유권자들은 끊이지 않았다.
기자가 사전투표소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거짓말쟁이(liar)’였다. 그들은 상대방을 그렇게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사회의 분열과 불신이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백인 남성 유권자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거짓말하는 사람 때문에 사전투표소를 찾았다”면서 “내가 어디에 투표했는지 알 수 있겠죠”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그는 증오를 퍼뜨리고 있고 미국을 극우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케빈이라는 중년 백인 남성은 “민주당은 비열한 정치공세로 트럼프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민주당의 거짓말은 끝이 없다”면서 “러시아 스캔들이나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의 성추문 의혹이나 민주당이 떠든 것 중에 사실로 드러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선거 프레임을 ‘경제’ 대 ‘반(反)트럼프주의’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프로비던스 커뮤니티센터 밖에는 공화·민주당 자원봉사자들이 세운 임시 천막이 있었다. 그들은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권자들에게 유인물을 전달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공화당 자원봉사자인 존 커틴은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 호황”이라며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이 사전투표장을 많이 찾아와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민주당 자원봉사자 로리 맥퍼슨의 말은 달랐다. 그는 “유권자들은 거짓말하는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기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의 경제 호황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힘들게 농사지은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열매만 따는 격”이라고 깎아내렸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 공화당 지지자는 “북핵 협상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데이비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트럼프는 자신에게 아부를 떠는 사람들하고만 사랑에 빠진다”고 비꼬았다. 민주당 지지자일수록 북한의 진정성에 의심을 많이 품었다.
페어팩스카운티는 워싱턴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인구는 버지니아주에서 가장 많은 114만8433명이고, 이번 중간선거 등록 유권자는 75만9585명이다.
사전투표 방법과 실시 시기는 주마다 다르다. 버지니아주의 사전투표는 지난 9월 21일부터 시작돼 11월 3일까지 이어진다. 버지니아주 사전투표에는 두 가지 제약이 있다. 일요일과 국경일에는 실시되지 않는다. 또 시험, 업무상 출장, 치료, 병원 입원 등 실제 선거일에 투표할 수 없는 구체적인 사유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시해야 한다. “일찍 투표하고 싶다”는 이유로는 사전투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소에서 느낀 선거 열기는 뜨거웠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중간선거의 특징으로 뜨거운 열기를 꼽고 있는데, 이런 보도가 가짜뉴스가 아님을 체감했다. 페어팩스 선관위의 유권자 등록을 담당하는 제리 스콧은 “현재까지 5만여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사전투표율은 6.6%인 셈이다. 그는 “1만5000여명이 직접투표를 했고, 3만5000여명이 우편투표를 한 것으로 집계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27일과 11월 3일 두 번의 토요일이 남아있다”면서 “남은 두 번의 토요일에만 2만여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대선과 따로 실시되는 중간선거는 투표율이 매우 낮지만, 이번에 이처럼 높은 투표 열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콧은 높은 사전투표율에 대해 “중간선거는 선거운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공화·민주당의 치열한 싸움이 높은 투표율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페어팩스(버지니아)=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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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0-26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