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어디든 작은 벽 하나만 있으면 복음을 알릴 수 있어요”

입력 2018-10-26 17:52 수정 2018-10-29 15:22
그래피티 아티스트 황은관 작가가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터널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황 작가는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에는 최대한 다양한 방법이 사용돼야 한다”고 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인근 터널 입구에 그려진 황은관 작가의 작품. 강민석 선임기자
배우 마동석의 이미지를 차용해 '너를 위해 기도하마'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강민석 선임기자
형광등 세 개만이 켜져 있는 어두컴컴한 터널. 갈색 모자를 쓴 남자가 스프레이를 흔들며 걸어온다. 한쪽 벽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이내 거침없이 흰 스프레이를 흩뿌리기 시작한다. 글자들은 남자의 손길 한 번에 조금씩 형체를 갖춰간다. 금세 영어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니’(시 118:6)라는 말씀이 드러났다. 터널 반대편으로 향하던 한 외국인은 벽에 그려진 성경 말씀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황은관(29·사진) 작가가 작업하는 장면이다.




황 작가는 스프레이 등으로 터널이나 건물 외벽 등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 그래피티(Graffiti)로 복음을 전한다. 사유재산인 건물 등에 함부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허가된 구역에서는 가능하다. 2018년 10월 현재 서울에서는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인근 터널과 강남구 압구정 일대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할 수 있다.

황 작가를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은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기독교의 선한 정신을 벽에 구현해보고 싶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마! 너를 위해 기도하마

황 작가가 그래피티를 그린 터널에는 유난히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었다. 터널 입구 근처에서부터 조금씩 보이던 스티커는 성경 글귀가 써진 작품에 가까이 갈수록 더 많이 보였다. 배우 마동석을 닮은 한 남성이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있고 아래에는 ‘MA!’(비속어 인마의 줄임말)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그는 “영화 ‘부산행’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주먹을 매만지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널 위해 기도하마’라는 뜻을 담아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래피티 작품 주변에 스티커를 붙인 것은 황 작가가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활동했던 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 팀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가 시초다. 황 작가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 팀은 인종차별 등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의미를 담은 작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팀의 이름도 엄청난 힘으로 유명했던 프로레슬러 앙드레 자이언트에서 따왔다. 그들은 처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때 앙드레 자이언트가 그려진 스티커를 작품 근처에 붙였다. 이렇게 붙은 스티커를 본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그들의 작품을 찾았다.

황 작가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복음을 심기 위해 스티커를 붙인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존재를 은연중에 바란다”며 “강력한 힘을 가진 마동석이라는 캐릭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면 젊은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내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티커를 만들어 붙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방황 끝에 얻은 예술의 길, 복음을 위해

황 작가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다. 모태신앙인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미술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몰래 고향 인천 구석의 버려진 전철 선로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면서 “고등학생 때는 미대진학반에 들어오라는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게 두려워 뿌리쳤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가 예술에 다시 가까워진 것은 군복무 중이던 2015년이었다. 육군 포병장교로 근무하던 황 작가는 “매 순간 불안했다”고 군 생활을 회상했다. 그해 여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일선 부대에서는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경계가 강화됐다. 여기에 군대 특유의 부조리까지 겹치면서 공황장애를 겪었다.

힘들어하던 황 작가를 위로한 것은 신앙이었다. 새벽마다 부대 주변 교회를 찾아 인근 성도들과 통성기도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주말에는 크리스천 병사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는 “찬송가 ‘주님은 산 같아서’를 부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면서 “스스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찾아왔다.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낮아진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흰 공책 앞에서 황 작가는 성경 말씀을 예쁜 글씨로 적는 캘리그래피부터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이 붙으면서 SNS에 작품을 올렸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힙합 문화를 적용해 그래피티 스타일의 글씨도 연습했다. 황 작가의 글씨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1세대 크리스천 힙합 가수로 유명한 아이작스쿼브가 앨범 커버를 위한 작업을 의뢰하는 행운도 얻었다.

전역 후 사회로 나온 황 작가는 본격적으로 예술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까지 겪은 혼란을 극복한 힘으로 예술을 계속할 겁니다.”

평양에서 그래피티 하고 싶어요

최근 황 작가는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성경 말씀을 그린 터널 입구에는 백범 김구부터 도마 안중근, 윤동주 시인 등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이한열 장준하 등의 민주화 투사들의 모습도 있다. 황 작가가 크루로 참여하고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팀 ‘레오다브’의 작품이다. 지난 3월 황 작가는 이곳에서 레오다브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이들은 지난 9월 열린 독립운동 영화제인 ‘레지스탕스 영화제’, 홍대 거리에서 열린 기독 청년 축제 ‘수상한 거리 페스티벌’ 등에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벽화 작업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사를 세상에 알렸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엽서 등 기념품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그래피티 작업을 하면서 기독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들의 존재도 알게 됐다. 황 작가는 가장 최근에 알게 된 기독 독립운동가로 전덕기(1875∼1914) 목사를 소개했다. 그는 “전 목사는 서울 상동교회를 섬기셨던 민족목회자 중 한 분이셨다”며 “독립협회부터 을사오적 처단 계획, 비밀결사 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 활동까지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분이 신앙을 갖고 계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황 작가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판문점이나 평양 한복판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일이다. 그는 북한 땅에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이나 민족을 위해 헌신한 기독 신앙인, 북한 내 민주화 투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황 작가는 “북한 사람들은 70년 동안 김일성의 항일 운동만 접해왔다”며 “그곳에서 그래피티로 남쪽에 알려진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남쪽에는 북한에 숨겨진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모자를 고쳐썼다.

너무 먼 꿈이 아니냐는 질문에 황 작가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피티이기 때문에 그릴 수 있는 꿈이라고 했다.

“제도권 미술에서는 평양 한복판에서 작업을 한다는 게 아직 부담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자유롭잖아요. 북한도 서서히 종교의 자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요. 판문점이든 평양이든 작은 벽 하나만 있다면 그곳에 복음과 기독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요. 그게 그래피티가 가진 힘입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영상=김평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