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빈 살만 왕세자 ‘배후’ 거론… 회초리 들었다

입력 2018-10-25 04:00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연루된 사우디 인사에 대한 비자 취소 등 제재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운데)가 이날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장에서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왼쪽 두 번째)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에 책임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미 국무부는 카슈끄지가 종적을 감춘 지 21일 만에 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인사 21명에게 제재 조치를 내렸다. 카슈끄지 실종 이후 한동안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사우디 왕실을 감싸왔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강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카슈끄지 사건을 언급하며 “역사상 최악의 은폐 시도”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의) 살해도, 사건 은폐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면서 “이번 일은 처음부터 총체적인 난국(total fiasco)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누군가가 범행 배후에 있다면 그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카슈끄지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대(對)사우디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카슈끄지 살해에 연루된 사우디 정보기관, 왕실, 외교부 및 기타 정부부처 소속 인사 일부를 확인했다”면서 “이들에 대해 미국 비자 취소와 비자 신청 자격 박탈 등 합당한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제재 대상자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제재 명단에 든 사우디 측 인사가 총 21명이라고 전했다. 국무부와 재무부는 세계 언론인, 내부고발자, 인권활동가 보호가 목적인 미국 국내법 ‘세계 마그니츠키법’에 따라 이들 사우디 인사들에게 금융제재를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조치는 미국의 마지막 말이 아니다”며 추가 제재 조치가 더 나올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런 강경 발언은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카슈끄지 살해를 사우디 측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정치적 살인이라고 규정한 직후 나왔다. 사건과 관련한 핵심 증거를 갖고 있는 터키가 사우디를 압박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가 궁지에 몰리면서 러시아가 미·사우디 간 틈새를 파고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슈끄지 사건의 여파로 세계 유명 인사들이 리야드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참석을 대거 취소한 가운데서도 러시아만은 자국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리트리에프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거물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미하일 보그다노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지난 21일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러시아와 사우디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