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노마드들, 달러 예금 가세

입력 2018-10-25 04:01

김은정 신한은행 PWM분당센터 PB(프라이빗뱅킹)팀장은 최근 자산가 A씨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김 팀장은 A씨에게 일정 규모의 자산을 미국 달러로 확보토록 조언하면서 단순히 달러 입출금통장에 넣지 말고 외화정기예금을 활용하라고 권했다. 달러는 높아지는 미국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국 원화보다 예금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 혜택이 큰 상황이었다. 외환시장에서 ‘강한 달러’ 기세가 계속되자 A씨는 금리 상승분에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었다.

전통적 금융상품인 예·적금에 달러를 활용하는 투자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거듭되면서 한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0.75% 포인트까지 벌어진 데 따른 재테크다. 달러 예금은 고액 자산가뿐 아니라 약간의 금리 차익이라도 거두려 하는 ‘금리 노마드(Nomad·유목민)’에게서도 엿보인다고 PB들은 말했다.

24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에 따르면 외화예금 중 달러화 예금의 잔액은 지난 6월 말 333억8400만 달러에서 지난달 말 357억8800만 달러로 몸집을 불렸다. 박일건 우리은행 본점영업부 PB팀장은 “한국보다 미국의 금리가 높기 때문에 고객들의 달러 상품 선호도가 분명히 높아져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외화정기예금에 특별금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여 고객을 모으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라는 전망은 달러 예금에 대한 관심을 더 뜨겁게 한다. 골드만삭스 등 금융회사들은 연준이 올해 1차례, 내년 3차례 등 향후 2년간 5차례가량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한다고 관측한다. 미 행정부가 압박을 하지만, 중앙은행 입장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모른 척하지 않으리라는 해석도 따라붙는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예측이 강했던 지난 1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금리를 동결했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진다는 점, 일반적으로 외환시장이 증시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 사업과 유학 등으로 해외 송금을 할 일이 많아진다는 점 등은 모두 달러를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성을 높인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도 외화정기예금이 차츰 인기를 끌고 있다. 김 팀장은 “‘엔화 환율’ 따위의 말이 종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지 않느냐”고 했다. 해외여행만 계획하더라도 외화 가치를 민감하게 여기지 않느냐는 얘기다.

은행권 외화정기예금 금리는 만기 3개월의 경우 연 2.2%, 6개월은 연 2.3%, 12개월은 연 2.5% 수준에 형성돼 있다. 일부 ‘특판 상품’은 이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김 팀장은 “금리 인상기에는 예금기간을 짧게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다만 PB들은 한꺼번에 달러를 많이 사들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박 팀장은 “환율이 올라갈 듯하니 달러를 사라는 식의 조언은 아니다”며 “주식 노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