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계단보다 높은 편견… 교회가 깨트립니다

입력 2018-10-26 17:44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장애인식개선 및 나눔행사 ‘2018 희망모아 나눔모아’에서 어린이들이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 체험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 시각장애인이 19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촉각을 통해 명화를 감상하고 있다. 장애인 바리스타와 지도교사가 25일 인천 하나비전감리교회 카페에서 커피를 만든 뒤 환히 웃고 있다. 시각중복장애인 재활기관인 ‘설리번학습지원센터’ 학생과 가족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에서 열린 가족운동회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장애인 바리스타와 지도교사가 25일 인천 하나비전감리교회 카페에서 커피를 만든 뒤 환히 웃고 있다.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제공
시각중복장애인 재활기관인 '설리번학습지원센터' 학생과 가족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에서 열린 가족운동회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제공
교회마다 예배시간에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는 찬송을 부른다. 과연 그럴까. 한국교회 장애인 선교의 현주소는 휠체어를 탄 교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을 배려해 전용 통로를 설치한 교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교인은 높은 계단 때문에, 그리고 편견 때문에 예배당에 들어가기 힘들다. 안타까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 부족은 예산 책정에서도 나타난다. 일부 교회를 제외하곤 장애인 관련 예산이 거의 없다. 장애인 선교와 복지활동에 무관심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장애인과 더불어 생활하고 섬기는 교회들이 있어 둘러봤다.

교회들, 장애인 일터카페·직업교육 운영

인천 남동구 하나비전감리교회 2층 카페에 가면 훈련된 발달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드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25일 오후 카페에선 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리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4∼5년 전만 해도 복지시설을 전전했다.

“땀 흘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 교회 부설 하나비전센터(직업재활센터) 임형빈 실장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자폐성 장애를 가져 “내 삶에 취업이 없을 줄 알았다”는 발달장애 1급 바리스타 이은표(30)씨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환히 웃었다.

이 교회는 1992년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다. 새 성전을 건축할 때 한 명의 장애인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95년 장애인 교회학교를 시작했다.

교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통합예배를 드리고 하나비전센터를 설립해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센터는 운동과 작업치료 외에 도예 홈패션 제과·제빵 공예 등 10여개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교육받은 뒤 직업실습을 거쳐 교회 안 일터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준비한다. 강사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다.

임 실장은 “장애인 사역으로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다른 교회들도 구체적으로 긍휼(장애인) 사역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용준(30·발달장애 2급)씨는 성공사례다. 여섯 살 때부터 미술과 음악치료를 받은 박씨는 제과·제빵과 도자기 공예 등 직업교육을 거쳐 전국장애인 기능경진대회에서 기기조립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박씨는 “요즘 빵을 만들며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도움을 주신 교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는 장애인 일터 ‘조스테이블(Joe’s table)’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조스테이블의 고용 원칙은 발달장애인과 일반인을 직원으로 채용해 서로 도우며 협력하게 하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 샘물교회도 교회 1층에 장애인 일터 카페를 운영한다. 장애인 고용창출을 위해 말아톤복지재단과 함께 꾸민 커피전문 매장이다. 4대 보험 가입은 물론 능력에 따라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전북 전주 안디옥교회는 예배 때 점자주보와 찬송가를 비치한다.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함이다. 처음엔 교인들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같이 식사하고 친교시간을 가지면서 차츰 어색함이 사라졌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다. 장애인들의 재활과 신앙, 의료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경북 포항 곡강교회는 최근 북구 흥해읍 용곡리의 한 장애인 가정에서 기공예배를 드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 가정은 지난해 가을 지진으로 벽체 균열과 누수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교회는 사실상 주거생활이 어려운 이 집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짓고 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예수님

성경에는 장애인에 대한 내용이 무려 160회나 기술돼 있다. 구약은 89회, 신약은 71회에 이른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에 대해 죄에 대한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임을 선포하셨다.(요 9:2∼3)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눅 4:18)를 위해 자신이 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셨다. 이런 예수님의 행적과 성경 구절들은 궁극적으로 교회가 장애인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할 성경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 선교단체들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복음화율은 5% 미만이다. 선교 전문가들은 “장애인 선교가 제대로 되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교회는 장애인을 영적 회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장애인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 교회학교에선 장애 아동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통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장애인의 복지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회장 심준구(시각장애 1급) 목사는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장애인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포기한다면 교회는 영적 회복의 대상으로서 장애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농아선교회(DMI) 한국담당 코디네이터 오세황 목사는 “교회가 이제 장애인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야 할 때”라며 “한국교회가 장애인을 위해 우선 갖춰야 할 것은 ‘∼을 위하여(for∼)’가 아닌 ‘∼과 함께(with∼)’의 자세일 것”이라고 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