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나 사회에서나 성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업 전도자가 되기 위해 총신에 들어오니 성차별적인 태도로 대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정말 알고 싶더라고요.”
총신대 최초의 여성 신약학 박사인 고(故) 황영자 박사가 2012년 총신대 신학대학원 여동문회 송년모임에서 전한 말입니다. 약사이자 회계사였던 황 박사는 1997년 54세 나이로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한 만학도였습니다. 그는 지병으로 별세했던 지난해까지 20여년간 성경 속 여성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특히 ‘여성 목사 안수 불가’ 등 여성 사역자가 겪는 불평등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걸 논박하려 했습니다.
황 박사 연구의 진가는 박사 논문인 ‘바울서신의 남녀관’에서 잘 드러납니다. 해당 논문에서는 고린도전서 11장 10절 해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여자는 그 머리 위에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둘지니라”라는 게 기존 해석이라면 “여자는 그녀의 원천인 남자에게 권위를 가져 마땅하다”고 새로이 해석한 겁니다.
황 박사는 지난해 6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고린도전서 11장 10절을 문법대로 보면 ‘여자는 천사 때문에 자기 원천인 남자에게 권위를 가져 마땅하다’라고 해석된다”며 “기존 해석과 굉장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러 번 확인을 했지만 아무리 봐도 기존 해석대로 ‘수동문’이 아니라 ‘능동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존 해석대로면 1600여년간 이 본문은 수동문으로 해석된 셈”이라며 “여자는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본문으로 그렇게 적용이 돼 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로마서 16장 7절에 등장하는 여성사도 유니아의 존재를 고증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유니아는 신약시대 당시 여자도 남자처럼 사도가 될 수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황 박사는 여성 목사 안수의 반대 근거가 되는 바울 서신 속 성경 본문을 원문대로 해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 너무 나간 해석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인식한 듯 논문 속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성경이 가는 데까지 따라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바로 멈추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 석사학위 논문 지도를 했던 고 정훈택 총신대 교수에게 받은 가르침인데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이 자세를 그대로 견지했다고 합니다.
지난 22일 총신대 신대원 여동문회 주최로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황 박사의 1주기 추모예배 및 출판기념예배’가 열렸습니다. 황 박사의 남편인 황의각 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뒤늦게 신학을 한 아내는 목회를 하려는 욕심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역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 했다”며 “그가 남긴 연구를 총신 여동문들이 신학적으로 잘 이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후학들은 이제 그의 연구를 계승하고 현실화하는 숙제를 안았습니다. 매해 교단 총대를 설득해야 하는 ‘풀기 어려운 숙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처럼 남자와 여자도 구분 없이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차별 없이 하나 되는 이 일에 모든 교회 여성들이 뜻을 모아보길 기대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양민경 기자의 응답하라 교회언니] 老박사가 남긴 숙제
입력 2018-10-26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