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 “재정적 사업 제외”… 자의적 해석 논란

입력 2018-10-24 04:00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평양선언과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 비준안을 재가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가 판문점선언과 달리 평양공동선언의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생략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재정적 부담 여부에 대한 법제처의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학자 사이에선 어차피 사안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두 선언을 분리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평양선언을 국회 비준동의 없이 대통령이 비준키로 한 것은 법제처의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기자들과 만나 “평양선언 비준은 이미 법제처 판단을 받은 사안”이라며 “판문점선언의 경우 우리가 국민적 합의와 안정성을 위해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두 선언 모두 반드시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사안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법제처는 국회 비준동의 요건인 ‘중대한 재정적 부담’ 포함 여부를 두고 판문점선언에 재정 투자 사업이 포함된 만큼 평양선언에선 이를 제외하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두 번 거칠 필요가 없다는 취지지만 평양선언에도 재정 사업이 들어 있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가 무산되면 평양선언 내 사업들도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고, 평양선언은 대통령이 비준을 하는 게 합당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명기된 ‘중대한 재정적 부담’의 기준이 애매해 비준동의 해당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현재는 행정부 해석이 자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얼마부터 ‘중대한 부담’인지가 결국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적 관례라든지, 추후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통해 판례로써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양선언만 비준하더라도 향후 사업별로 국회 동의를 받으면 사실상 모든 선언의 비준 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판문점선언 역시 세부적인 재정 부담 사업은 명기되지 않았다”며 “철도나 도로 연결, 경제적 지원이든 하나하나 남북이 합의하고 그때마다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며 “판문점선언으로 포괄적 동의를 받고 아무거나 하겠다는 건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정부가 현재의 남북 관계를 서둘러 불가역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비준을 강행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는 “판문점선언이나 평양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 같다”며 “일단 빨리 실천 단계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은 비준안(대통령령)은 대통령이 바뀌면 언제든 폐기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놓자는 마음에 비준을 강행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에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는 “인도적 지원이든 실제 사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든 모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포함돼 있다”며 “이번 비준은 국민적 여론 환기 수단이 아니라면 매우 무리하게 강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준구 박세환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