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정부의 ‘평양선언 셀프 비준’에 “엿장수 논리인가”

입력 2018-10-24 04:00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안을 의결하자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독단과 전횡을 일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은 두 선언·합의서 비준에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법제처에 대해서도 “어느 나라 엿장수 논리냐”며 비판했다.

한국당은 법제처가 정부 입맛대로 오락가락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 10·4 공동선언 비준은 국회 동의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가 올 4·27 판문점선언은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고,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심사에서는 다시 동의가 필요 없다는 판단을 한 데는 ‘정치적 의도성’이 담겼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김외숙 법제처장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이자 문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했던 점을 주목한다.

법제처 해석이 엇갈린 것은 남북관계발전법 제21조 3항이 국회 동의 요건으로 규정한 ‘중대한 재정적 부담’ 해당 여부를 남북합의서마다 달리 평가한 결과다. 법제처는 판문점선언의 경우 “이행과 사업 추진에 상당한 규모의 국가재정이 요구된다”고 해석했지만, 평양선언은 필요한 예산이 이미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에 포함돼 있어 별도 재정 부담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법제처장은 “남북합의서 비준 권한은 대통령이 갖지만, 예산 조치가 수반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며 “판문점선언 자체가 동의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후속 합의격인 평양선언은 국회를 건너뛸 수 있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표현도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권해석 수행은 정부의 정식 의뢰에 따라 외부위원이 다수인 법령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평양선언 등에 대한 판단은 법제처가 통일부의 문의를 받아 내부 법제관실에서 검토한 뒤 심사결과를 공문으로 회신하는 경로를 통했기 때문이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정부의 아전인수격 법 해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굴종적인 대북정책에 경도돼 국회와의 협치마저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통전화에만 신경 쓰지 말고 야당과의 ‘직통전화’도 놓았더라면 이렇게 순서가 꼬이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한국당 반발이 거세고 바른미래당도 “대통령이 직접 비준하라”는 입장이라 연내 비준동의안 통과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지호일 이형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