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주식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빌려주는 행위를 전격 중단했다. 빌려준 주식이 외국인투자자 등의 ‘공매도’에 쓰인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한 발 물러섰다.
국민연금의 주식대여 금지를 주장해온 ‘개미’(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줄어들 것이라며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대여 금지로 얻을 이득이 실증적으로 분석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수수료 수입을 포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공매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부 토론을 거쳐 지난 22일부터 국내 주식 신규 대여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이미 빌려준 주식들도 연말까지 회수키로 했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가 공매도 및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뒤 대여 재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가 도마에 오른 건 빌려준 주식이 공매도에 쓰여 외국인의 배를 불린다는 비판 때문이다. 공매도는 투자자가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린 뒤 매도하는 투자 기법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1만원인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주가가 8000원으로 하락하면 8000원에 주식을 사서 갚는다. 주식이 없어도 2000원 차익이 난다.
공매도는 개인이 하기 어렵다. 코스피시장에서 개인의 공매도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 주식을 빌려올 만큼 신용도가 높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개미들 사이에서는 외국인들에게 눈 뜨고 당한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개미들은 또 외국인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주식을 빌려 매도 물량을 쏟아내면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공매도가 쏟아지면 겁을 먹고 주식을 파는 개인들도 생겨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불만에도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여해주는 이유 중 하나는 수수료 수입이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주식대여 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138억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약 27조원)에 비하면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다양한 변수가 있는 주식시장에서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직접적 원인인지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도 그간 전체 국내 주식 대여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비중(1.86%·주식 수 기준)이 높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대여 정책을 유지해 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중단해도 당장 공매도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시각과 간극이 크다. 박창호 공매도제도개선모임 대표는 “거시적 상황을 보는 것과 실전 투자는 전혀 다르다”며 “외국인의 지분이 높지 않은 중소형주 종목의 경우엔 대여 중단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국민연금이 대량 매수하는 종목은 향후 공매도에 쓰여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퍼져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액수가 문제가 아니고 별다른 근거 없이 수수료 수입을 포기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데 대여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공매도 규제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줘 외국인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공매도 창구’ 비판에… 국민연금, 주식 대여 중단
입력 2018-10-23 18:22 수정 2018-10-23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