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죽음을 넘어 고요의 바다로

입력 2018-10-26 18:00
주인공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 위를 걷고 있는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공식 스틸
임세은 영화평론가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고,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는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어떤 이는 가장 추운 지구의 끝에 간다. 누구는 물이 없는 막막한 사막을 건너고, 어떤 이는 우주를 통과해 달에 가려 한다. 죽음을 무릅쓴 험한 여정에 오르고 고통을 감내하며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향한다. 사람들은 왜 모든 것을 걸고 미지의 땅으로 가는가.

지구에서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달에 도착한 장면을 TV생중계로 지켜보던 때가 있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그는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 드라마 ‘위플래쉬’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셰젤이 암스트롱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퍼스트 맨’을 스크린에 올렸다. 영화가 세상에 처음 나온 지 몇 년 후, 조르주 멜리에스가 영화 ‘달나라 여행’(1902)을 만든 이래 인간이 우주로 향하는 많은 영화가 기획됐다. 공상과학소설 SF(Science Fiction) 장르라 일컬어지는 영화의 한 영역이다. 때로는 ‘스타워즈’처럼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담았고, ‘아폴로13’처럼 가장 사실적으로 우주 체험의 접근을 시도했던 영화도 있었다.

‘퍼스트 맨’은 암스트롱의 경험에 비춰 다큐멘터리 방법으로 시도한다.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역)의 실제 경험처럼 관객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체험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폐쇄공포를 일으키는 좁은 공간에서 전신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혼절할 것 같은 우주훈련을 한다. 어린 딸의 죽음, 그리고 함께 훈련하던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 곳곳에 죽음의 이미지가 있다. 암스트롱이 도착한 달 표면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한다. 촬영감독은 달을 근거리에서 본 뒤 “마치 죽음의 땅을 보는 것 같다. 뭔가, 우리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우주는 경이와 공포의 공간이다. 끝도 없는 우주의 망망대해 속에서 홀로 있는 기분은 어떨까. 달에 가기 전 암스트롱은 동료와 밤 산책을 한다. 동료는 “아빠가 있는 달에 가면 외롭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한 아들과의 대화를 들려준다. 그 순간 암스트롱은 큰 나무에 달린 작은 그네를 바라본다. 두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이 타던 그네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린 딸의 죽음은 모든 위험을 무릅쓴 암스트롱의 여정과 겹쳐진다. 따뜻한 온기가 여전히 생생한 딸의 죽음은 그의 마음속에 커다란 암흑을 남겼다. 이는 우주의 크기와 다르지 않다. 거대한 어둠 가운데 무력한 어린 딸을 홀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료마저 사고로 떠나보낸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해 거대한 경이의 공간에서 딸의 유품을 꺼낸다. 달에 도착해 발자국을 찍는 것 외에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암석을 채집하는 장면은 모두 생략됐다. 국가적 성취와 승리를 게양하는 대신 영화는 한 인간의 외적인 모험을 내면의 모험과 일치시킨다. 죽음을 무릅쓴 인간의 무모한 도전을 이해 가능하고 성찰적인 것으로 만든다.

우주 영화의 아름다운 환상 대신 어지럽고 멀미가 날 것 같은 이미지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것은 죽음의 땅 같은 달의 표면과 딸의 죽음이 만나 일으키는 깊은 공명 때문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롬 8:35)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죽음을 넘어 부활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향해 가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제목 ‘퍼스트 맨’을 달리 말할 수 있다. 암스트롱은 달에서 살아 되돌아온 첫 번째 사람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