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넘어…1년가량 연극 연습, 기적을 무대에 올리다

입력 2018-10-23 00:01
서울 영락교회 베다니홀에서 지난 20일 연극 ‘붕어빵의 비밀’을 선보인 장애인 교회학교 사랑부 학생들. 영락교회 제공
사랑부 학생 및 학부모가 교사들과 함께 5개월간 필사한 신구약 성경을 김운성 목사에게 기증하는 모습. 영락교회 제공
대사는 한 음절씩 끊어졌다. 시선도 객석의 한 지점에 고정됐다. 몸짓 역시 어색해 박자를 놓치기 일쑤. 그래도 이들이 무대에 선 것 자체가 기적이다. 장애, 그 약함이 축복이었다.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는 지난 20일 베다니홀에서 사랑부 창립 20주년 기념 연극 ‘붕어빵의 비밀’을 선보였다. 지능 운동 언어 자폐 등 발달장애를 가진 이 교회 사랑부 학생들이 배우로 출연했다. 1시간여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1년가량 연습과 준비가 필요했다.

사랑부 윤재식 지도권사는 “보통 두세 번 반복하면 외울 대사 한마디를 이 친구들은 스무 번 서른 번 되풀이해야 했다”고 말했다. 발음 교정이 제일 어려웠다. 쉽게 지치곤 하는 친구들, 돌발 행동으로 주변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도 잦았다. 그럼에도 임평호 지도목사는 “처음 사랑부에 와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학생이 지금은 연극 안에서 대화를 소화해 내며 연기를 펼친다”고 했다. 자기 통제가 어려운 친구들이 스스로 무대에 서기까지 학부모 교사 목회자의 땀과 눈물, 사랑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랑부다.

연극은 난치병에 걸린 동생을 살리려는 언니의 이야기다.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천사가 이 땅에 내려와 사람들과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언니는 국회의원과 재벌 회장, 방탄소년단에 필적할 ‘방콕소년단’ 등을 따라다니며 동생을 낫게 할 방법을 묻지만 외면당한다. 나중에 예수님으로 밝혀지는 붕어빵 장수가 클라이맥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동생이 아파야 하는지 물었지요. 왜 사람들이 장애를 겪는지 물었지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돈과 권력을 믿고 살아가지요. 하지만 아픔이 있고 약함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약함으로 하나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 약함이… 축복인 거죠.”

영락교회는 1998년 장애를 가진 4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사랑부를 시작했다. 교회에 오고 싶어도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예배에 방해가 될까 봐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장애인 학부모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됐다. 20년 지난 지금 학생 60여명과 교사 70여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일대일 공과공부를 한다. 돌봄의 손길이 필요해 학생보다 교사가 더 많은 교회학교다.

연극에서 딸이 국회의원으로 열연한 학부모 정시원씨는 사랑부 창립 20주년 회보를 통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고 장애인 엄마들은 비현실적 기도를 합니다. 아이와 함께할 동안 최선을 다하겠지만 딸이 언젠가 엄마 없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톨스토이 소설에서 마트료나는 ‘부모 없이는 살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7)는 말씀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이날 사랑부 학생 53명과 교사 77명, 학부모 30명은 함께 나눠 쓴 신구약 성경 필사본을 교회에 기증했다. 한 글자 쓰는 데 온 힘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학생들이 교사 학부모와 삼위일체가 돼 지난 4월부터 5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김운성 목사는 “건강한 사람 끼리만이 아니라 연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며 “소외되고 연약한 이들 곁에 머물렀던 예수님 손길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