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겸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입력 2018-10-23 00:03

목회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목사님은 목회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주저하지 않고 나오는 대답은 “바로 저입니다”이다. 겸손한 척하는 대답일까. 아니다. 진실로 사실이다. 목회의 걸림돌은 결코 어려운 환경일 수 없고 잘 따르지 않는 회중일 수 없다. 목회자 자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겸손을 잃어버린 목회자 자신이다.

목회자는 모든 종류의 문제가 목회자 자신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교만이란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다. 겸손이란 교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 안에 교만이 숨어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만에 물들어 버린 자아를 온전히 부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악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덜 나쁜 다른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옵니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악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의 유명한 고전인 ‘겸손’에서 이렇게 말했다. “겸손은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는 죽음이 겸손의 완전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자아의 죽음이라는 꽃에 맺히는 완전한 열매입니다.”

겸손의 본질은 옛 자아의 죽음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겸손은 자신에 대하여 죽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그때 우리는 타락한 본성에서 자유롭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성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구원이란 겸손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겸손이 우리의 구원이 되고 그분의 구원이 우리의 겸손이 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교만의 죄로부터 구원받고 회복됐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영적 성장의 단계에 이르렀든지 교만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이고 겸손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친구가 돼야 한다.

교만은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 의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겸손은 죄가 우리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죄로 인한 수치와 징벌로 인해 때로 영혼이 겸손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은 겸손이라기보다는 그냥 기가 꺾인 것뿐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존심이 죄로 인해 벌 받으면서 부러져 그 높이가 낮아진 것뿐이다.

진정한 겸손은 크고 놀라우신 은혜 앞에서 한없이 작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그분 앞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열매가 가득하면 가지가 휘어지고 강물이 넘치면 강바닥이 깊어진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만이 이런 겸손함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을 우리 것으로 삼는 믿음으로 인해 이런 겸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지도자들에게서 이런 겸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겸손이 사라지고 있다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서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은 먼저 목회자들에게서 보여야 하기에 ‘나 자신’이 목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심을 다한 사역들 속에 혹 겸손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지 깊이 돌아보고 싶은 요즘이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