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공시가격, 강북 1억 주택은 시세 95%, 강남 64억은 25%

입력 2018-10-23 04:00 수정 2018-10-23 10:36

부동산 공시가격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점이다.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지고 거래세(양도소득세, 취등록세, 상속·증여세) 책정에도 활용된다.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판단하는 기준 등 세금 외에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게 60개에 이른다. 하지만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이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고가·저가주택 간 형평성 문제도 불거진다.

정부는 뚜렷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사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국감정원의 전문성·중립성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시가격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단골손님은 ‘형평성’이다. 22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단독·다가구주택 실거래가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억1000만원에 거래된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1억400만원이었다. 시세반영률이 94.5%나 된다.

반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고급 단독주택은 64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공시가격은 16억원이었다. 시세반영률은 24.8%에 불과하다. 공시가격을 바탕으로 보유세, 거래세를 매기는 걸 감안하면 미아동 주택 보유자는 역삼동 주택 보유자보다 가격 대비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냈다는 얘기다.

불균형은 불투명한 공시가격 책정에서 비롯된다. 공시가격은 크게 3단계로 산정된다. 우선 대표성을 띠는 표준주택 22만 가구를 뽑아 한국감정원이 공시가격을 조사한다. 이걸 바탕으로 비준표를 만든다. 개별주택을 비준표에 대입해 공시가격을 산출한다.

그런데 표준주택 가격을 조사·산정할 때 어떤 방식을 쓰는지 공개된 적이 없다. 표준주택 조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개별주택 공시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만 공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제주대 정수연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주택공시가격을 평가하는 반면 한국은 감정평가사 자격증이 없는 비전문가가 단순산정을 한다”며 “이 산정의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지, 사용된 자료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산정을 하는지 공개된 바도 없고, 검증된 바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감정원 직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 주택의 시장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보다 주변 실거래가격만 쫓는 문제도 발생한다. 거래가 드문 고가 주택보다 실거래가 빈번한 서민 저가 주택만 시세반영률이 높아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공시가격 산정에 쓰이는 공시비율도 논란거리다. 국토부는 최초 공시가격에 80%의 공시비율을 곱해 최종 공시가격으로 공시한다. 조사원이 주택 가치를 10억원으로 산정하면 8억원이 최종 공시가격이다. 세 부담의 급등을 막는 장치인데, 되레 주택 공시가격과 현실의 괴리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도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7월 관행혁신위원회 발표를 통해 공시가격 조사·산정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다만 개선안을 내는 걸 주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공시가격 평가에 매우 다양한 지표들이 고려되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공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