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카카오페이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로는 고가의 텔레비전을 구입할 수 없다. 각종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충전 한도가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200만원으로 한정돼 있어서다. 중국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간편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로 집까지 사고팔 수 있을 정도다. 알리페이는 일정 기준을 충족한 고객들에게 부동산 임대 시 보증금을 면제해주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정부가 아직도 ‘낡은 규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산업’의 규제 혁신에 적극 나선다. 간편결제 서비스로 200만원 이상 고가 물품을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푼다.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 등 모바일 직불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때 신용카드보다 더 많은 혜택을 고객에게 줄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핀테크 금융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이런 방안을 논의했다고 21일 밝혔다. 규제 혁신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와 함께 금융 분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간 핀테크 규제 완화는 필요한 분야를 그때그때 관계부처들이 논의하는 수준이었다. 정부부처와 민간이 모여 전방위로 규제 완화를 검토하기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유권해석들도 처음부터 재검토한다. 김 부위원장은 “세계 주요국들이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전력질주하고 있다”며 “우리의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창조적 추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핀테크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계좌송금 서비스에서 시작한 영국 핀테크 업체 레볼루트는 주택담보대출, 자산관리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시장가치만 17억 달러(1조8000억원)에 이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구자현 선임연구위원은 “단일 서비스에서 복합 서비스로 핀테크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기존 금융회사에 맞춰진 ‘그물망 규제’가 복합 서비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KDI가 최근 64개 핀테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더니 80%가 “과도한 금융 규제가 산업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정 조건을 두고 핀테크 업체에 금융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아직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내용을 담은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TF는 ‘5대 집중 점검 분야’를 선정하고 규제 걸림돌을 제거하기로 했다. 우선 핀테크 기업 투자 활성화를 검토한다. P2P(개인 간 금융거래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금융회사가 P2P 신용대출에 투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 금융회사의 투자가 허용되면 신용대출 P2P 시장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P2P 업계를 우량업체 위주로 재편할 수 있다. 중금리 대출 시장에서 경쟁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TF는 금융 분야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도 다룬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피해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도 찾는다. 현재 신용정보법상 개인 신용정보의 제3자 제공은 고객의 사전 동의 등이 있어야 가능하다. 피해 사례 공유가 어려운 구조다. 기업은행은 기존 보이스피싱 사례를 분석해 금융사기를 예방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경우 통화 중 실시간으로 ‘경고 알림’을 보내는 식이다. 규제가 풀리면 이런 서비스를 더 활성화할 수 있다.
비대면 금융 거래에도 무게가 실린다. 인공지능(AI)이 투자를 담당하는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의 경우 고객에게 비대면 거래를 제공하려면 자기자본이 4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핀테크 스타트업에는 과도한 규제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간편결제 서비스 고도화는 소비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QR 결제 같은 모바일 직불 결제를 활용할 때 신용카드보다 혜택을 더 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카드 가맹점들은 고객들이 신용카드 외 결제수단으로 물건을 살 때 신용카드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없다. 이를 유권해석을 통해 풀어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신용카드 및 모바일 결제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면 소비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이밖에 블록체인 활성화를 가로막는 신용정보법 등 개정에도 나선다. TF는 3∼4개월간 논의를 거친 뒤 내년 초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간편 결제로 200만원 이상 고가 물품 살 수 있게 한다
입력 2018-10-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