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경비나 운영, 예·결산 등에 대한 자문 역할을 통해 사실상 유치원을 자율 감독할 수 있는 유치원운영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운영위 운영이나 구성, 권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아 학부모 위원들이 유치원 결정의 들러리만 서 왔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이모(29·여)씨는 21일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운영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 유치원에서 ‘6명의 학부모 위원이 있다’고 했지만 그동안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이 위원들은 어떤 기준으로 뽑혔는지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학기 초에 운영위원에 지원하라는 공문을 받은 뒤로 지난 7개월간 내역공개 등 운영위 논의사항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한 학부모는 “유치원이 개인 재산이라 정부 감시가 어렵다면 돈을 내고 있는 부모들이 감시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국공립 유치원운영위는 유치원규칙의 개정이나 예·결산, 학부모 부담 경비, 급식 등에 대한 사안을 심의한다. 사립유치원의 경우 운영위를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해 자문을 받아야 한다. 학부모 운영위원은 문자나 우편을 돌려 직접 선출하거나 학부모 대표회의에서 간접 선출해야 한다. 절차를 제대로 지켰다면 학부모들이 운영위원이 뽑혔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학부모 운영위원이 ‘친(親) 원장파’ 학부모로 구성되거나 머릿수만 채우는 들러리로 전락하는 일도 대부분이다. 실제 이번 사태 후 한 사립유치원장은 “(운영위를) 유치원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했고, 활동사항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7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는 “운영위원으로 위촉된 엄마들도 아이를 생각하면 원장이 제안한 안에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며 “자유롭게 반대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들러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 학부모는 “운영위에 아이들 급식비에서 교사 식사비용을 충당한다는 내용의 안건이 올라왔고, 만장일치로 승인됐다”며 “학부모들 사이에선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안건에 반대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유구종 강릉원주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회계나 행정 담당자를 따로 두거나 운영위 구성·운영상의 구체적인 지침을 두지 않는 곳도 많다”며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열려온 운영위가 많고, 운영위에서 논의된 사항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활동가 진유경씨는 “운영위는 참여율이 낮아 유명무실하고 대부분 학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며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유치원에 ‘볼모된 아이들’… ‘학부모 운영위원’ 감시자 역할 못해
입력 2018-10-22 04:00 수정 2018-10-22 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