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저지르고 또 심신장애라니…’ PC방 살인사건 공분 ‘활활’

입력 2018-10-21 18:22 수정 2018-10-21 23:15

20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심신장애 감면’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피의자가 10년째 우울증을 앓았다고 주장하면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 달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음주나 정신질환 병력을 인정받아 형을 감경 받으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한 모양새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1일 오후 8시까지 80만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청원이 올라온 지 나흘 만으로, 역대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사건이 발생한 PC방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고 국화꽃도 놓였다.

경찰은 살해 피의자 김모(29)씨의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김씨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위원회를 열어 그 결과를 22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이날 김씨를 치료감호소로 보내 정신감정을 받게 한다. 김씨는 아르바이트생인 피해자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률에서 말하는 ‘심신장애(心神障碍)’는 ‘마음과 정신의 장애’를 뜻한다. 형법 제10조 1,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는 자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고(심신상실),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부족한 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면(심신미약) 해주고 있다.

이런 조항을 둔 이유는 형법이 고의성에 초점을 맞춘 ‘책임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신의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는 걸 명료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묻는다는 게 형법의 기초”라고 설명했다.

정신과전문의는 생물학적으로 피고인의 정신장애를 진단하지만, 법관은 범행 당시 사물변별 능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미약했는지 ‘규범적’으로 판단한다. 법조계에선 판결 과정에서 심신미약 부분을 매우 엄격하게 따지는 추세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이 심신미약을 감경한다고 정하고 있어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도 “최근 음주 후 발생하는 범죄의 심각성과 여론 등을 감안해 피고인에 대한 의학 감정을 엄격하게 고려해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4∼2016년 국내 판례를 분석한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법원의 심신장애 인정 빈도는 매우 낮았다.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논의된 판례는 전체 형사사건의 약 0.1%인 1597건에 불과했다. 이들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305건에 대해서만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인정됐다.

전문가들은 심신장애 조항을 완전히 삭제하기는 힘들다는 시각이다. 김재봉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기간 학대를 받아 남편을 살해한 여성의 경우 오히려 사회의 공감을 받는다. 이런 범죄는 심신장애 조항이 필요한 경우”라며 “법에는 늘 양면성이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책임주의를 전면 해제하는 부분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신장애에 대한 논의가 처벌 강화가 아닌 ‘치료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피의자가 언젠가는 사회에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며 “재범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격리한 상태에서 치료받도록 하는 치료감호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안대용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