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년 공들여 美수출길 열었는데…” 어느 철강 中企의 피눈물

입력 2018-10-21 17:42 수정 2018-10-23 18:58
철강재를 만드는 중소기업 A사는 요즘 파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올해 초만 해도 수년간 공 들여 뚫은 미국으로 수출 물량이 늘면서 ‘장밋빛 미래’가 찾아오는 듯했다. A사의 주력 제품 중 하나는 자동차용 철강 부품이다. 올해 들어 5월까지 미국에 1000t 이상을 수출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미국이 ‘철강 규제’를 발동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한국과 미국이 ‘철강 쿼터’(quota·수출입에 공식 허용하는 할당량)에 합의했고, 지난 5월 A사에 배정된 쿼터는 이미 수출한 물량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초과 수출 때문에 벌칙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 7년간 미국 수출 자체를 못 할 처지에 놓였다.

A사가 최근 3년간 시장 개척 차원에서 소량을 수출했던 게 발목을 잡았다. 미국 상무부가 발동한 ‘철강 232조’는 한국 등 쿼터 배정 국가의 경우 올해 수출 물량을 2015∼2017년 평균 수출 물량의 70%로 제한한다. 한국은 올해 263만1012t을 할당받았다. 이걸 다시 국내 산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업체별 배분을 했다.3년간 실적이 낮았던 A사는 소급 적용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내년 수출 쿼터를 0t에서 살짝 늘린 게 전부다.

A사 대표 B씨는 21일 “지난 5∼7월 받은 수주 물량만 해도 1900t이었는데 전부 취소됐다. 만들어놓은 제품은 고철덩어리로 변했다”며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을 잃은 데다 생산품까지 내다버려야 하는 형편”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여기에 또 ‘날벼락’이 떨어졌다.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당장 대출금리가 오르게 생겼다. A사가 은행으로부터 받은 중소기업 전용 대출은 연말 결산 실적을 기준으로 내년 대출금리를 정한다. 차선책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의 수출기업 시설자금을 알아봤지만 이 정책 상품은 감사원 지적을 받고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사정도 암울하다. 원자재를 생산하는 철강업체들은 올해 초 단가를 올렸다. 그런데 완성차 업계는 납품 단가를 인상해주지 않는다. 대기업들 사이에서 ‘샌드위치의 햄’처럼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B씨는 “원자재를 월 1000t만 써도 매월 1억원이 더 든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라도 납품가에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피눈물’을 흘리지만 정부의 도움은 없다시피 하다. B씨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하소연했지만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보느냐. 한국철강협회에 문의하라’고 했다. 내년에 최저임금, 국민연금 다 오를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난데없는 일들이 터지면서 중소기업만 죽어나고 있다. 우리 회사 같은 중소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고 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