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뺀 교육부, 25일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 집단행동 땐 강경 대응

입력 2018-10-18 18:29 수정 2018-10-18 23:50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와 관련해 “갑작스런 유치원 폐업이나 집단휴업에 엄단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감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비리 유치원은 앞으로 실명을 공개한다. 규모가 크거나 비싼 원비를 요구해온 유치원 등은 우선 감사 대상으로 지정해 내년 상반기 안에 들여다보기로 했다. 원아를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이는 유치원에는 강경 대응키로 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제대로 감사 강화 방안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교육부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열고 사립유치원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감사결과 공개 등에 합의했다.

우선 2013∼2017년 전국 시·도교육청들이 진행했던 유치원 감사 결과는 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5일 전면 공개키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감사결과는 학부모에게 모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울산·세종·충북·전남·경남 등을 뺀 11개 교육청은 유치원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최근 언론사를 상대로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 판단과 상관없이 실명을 공개키로 했다. 다만 설립자와 원장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경미한 사안은 교육청 재량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한다.

내년 상반기 안에 감사를 완료할 ‘우선 감사 대상’은 3가지 기준으로 지정된다. 먼저 그간 감사에서 적발된 사항을 시정하지 않은 유치원이다. 비리 신고가 접수된 유치원도 포함된다. 교육부와 교육청들은 유치원 비리신고센터를 19일부터 개통해 운영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년 초까지 운영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 영유아 보육·교육시설의 부패 공익침해행위 집중 신고기간’과도 연계한다. 대규모 유치원도 우선 감사 대상이다. 정부는 대규모의 기준은 원아 200명으로 설정했다. 또한 고액 사립유치원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상은 학부모 부담금 50만원 이상이다.

무단 폐원 등 집단행동에는 강경 대응키로 했다. 한유총은 “휴원 등 집단행동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란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폐원을 검토하거나 신입생을 받지 않는 등의 실력 행사를 운운하는 곳이 없지 않다. 때문에 유치원 학부모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유치원 폐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지원청 인가 사항이다. 학습권 보호를 위해 무단 폐원은 불가하다”며 “폐원 인가 없이 폐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 부총리는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사립유치원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질 때까지 교육 당국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하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유치원 공공성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별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제도개선, 법령 정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각 시·도교육청도 별도 전담팀을 꾸리기로 했다. 유치원 국가시스템 도입 등 보다 종합적인 대책은 여당과 교육청 등과 추가적인 협의를 거쳐 다음 주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놓은 사립유치원 감사 강화 방안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봐주기 감사’ 의심을 떨칠 만한 구체적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의 로비력은 정평이 나 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선출직인 교육감조차 눈치를 살핀다. 이들의 파워는 선거철에 극대화된다. 교육청과 사립유치원은 국·공립유치원 확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유착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12년에는 유치원 원장들이 돈을 모아 교육감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한 ‘옷 로비’ 사건으로 부산 교육계 전체가 떠들썩했던 일도 있었다.

이번 교육부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시·도교육청의 감사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해야 한다. 이날 브리핑에서 “교육청 직원들과 사립유치원들이 마치 계모임 하듯 친근한 사이인 경우도 봤는데 감사가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교육부 관계자들은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차원의 대책이라면 적어도 경기도교육청 감사 담당자는 서울시교육청으로, 서울의 담당자는 부산으로 이동시키는 등 감사 인력을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족한 감사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도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우선 감사 대상 유치원에 대해 내년 상반기 중 감사를 마치고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우선 감사 대상의 규모는 시·도교육청별로 파악할 것으로 알려졌다. 몇 개 유치원이 감사 대상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아 필요한 감사 인력 규모도 확정되지 않았다.

숙련된 감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도내 유치원을 전부 감사하려면 30년이 걸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시·도교육청 감사 인력은 유치원뿐 아니라 초·중·고교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을 내년 상반기까지 모조리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