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확산 시대 선조들은 어떻게 믿음을 지켜왔나

입력 2018-10-19 00:01
프랑스대혁명이 한창이던 1793년 당대 정치 지도자들은 ‘이성의 숭배’를 그리스도교 사상의 대체물로 제시하고 교회를 ‘이성의 신전’으로 바꿨다. 이성의 신전이 된 노트르담 대성당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한국교회는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그 시대를 집중탐구했다. 1년이 흐른 지금 16세기 이후 격변 속 사회 변화와 기독교의 응전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뿌리내리는 정통주의 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17세기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신학을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는 18∼19세기 혁명의 시대에 기독교의 몸부림을 사학자의 눈으로 예리하게 읽어내고 있다.

뿌리내리는 정통주의 신학/권경철 지음/도서출판 다함

종교와 사상의 역사에서 16세기는 단연 종교개혁의 시대다. 18세기는 계몽주의와 경건주의 시대로 불린다. 17세기는 어떤 시대일까. 이 시기는 다소 모호한 시대로 평가받는다. 이성주의·계몽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교회가 이성에 물들어가는 위험한 세기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스콜라주의에 물든 죽은 정통의 시대’라는 오명까지 얻는다. 과연 그럴까. 책은 과소평가된 17세기를 적극 변호한다.

이를테면 벨기에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신경,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등 굵직한 신앙고백서들은 모두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청교도 신앙은 이 시대에 꽃을 피웠다. 당시 신학자들은 사변적 신학 대신 성경주해와 설교, 목회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경건을 지향했다.

장 칼뱅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제네바 종교개혁을 이끈 테오도르 드 베즈(영미권에선 베자)는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를 대표하면서 저항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예정론뿐 아니라 신약성경의 원문 연구에 힘썼고 주석했다. 제네바 이민 3세였던 프랑수아 투레티니는 당시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대에 전수했다. 미국의 조너선 에드워즈는 그를 ‘위대한 투레틴’으로 불렀다. ‘언약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던 요하네스 코케이우스, 옥스퍼드대 학장을 지낸 존 오웬 모두 17세기 대표 주자였다. 오웬은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로 불리며 사보이선언이라는 회중교회 신앙고백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저자는 17세기 신학이 우리에게 낯선 결정적 이유로 언어의 생소함을 꼽았다. 당시 주요 신학 작품은 모두 라틴어로 저술됐고 영어나 프랑스어로 번역된 게 별로 없다. 한국어는 더더욱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17세기 신학은 우리에겐 철저히 감춰져 있다. 책은 당대 신학자 11명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작품 중 일부를 원전에서 직접 번역해 실었다. 저자 자신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정보를 수록해 이해를 도왔고 17세기 신학 개관과 읽을거리, 연표를 부록에 첨부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윤영휘 지음/홍성사

기독출판사 홍성사가 지난해 기획한 ‘그리스도교의 역사’ 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그동안 교회사를 세속 역사에서 떼어내 따로 읽다보니 오히려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저자는 소장학자인 윤영휘 경북대 사학과 교수. 세속 역사학자의 눈으로 18∼19세기 근대교회사를 다룬다.

그는 “근대라는 시기에 그리스도교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 교회가 존재했던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측면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교회사의 사건 인물 개념이 가지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근대 유럽사회는 여러모로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확산된 시기다. 피 냄새가 진동했던 종교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종교 자체에 회의를 품었다. 이신론의 등장,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한 의심과 비판도 본격화됐다. 이런 시대적 조류에 조지 휫필드와 같은 기독교인들은 ‘대각성운동’으로 불리는 부흥운동으로 맞섰다.

대서양 건너 미국의 독립혁명은 근대적인 정교분리를 통해 기독교에 또 다른 도전을 안겼다. 국교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국 사회는 법률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의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어 영국의 윌버포스가 주도했던 노예무역 폐지 운동, 프랑스 혁명, 민족주의에 기반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등의 과정에서 기독교가 어떤 식으로 조응했는지를 살펴본다. 과학과 역사의 발전으로 세속화가 확산되면서 본격화된 세계 선교는 기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저자의 명료한 설명이 방대한 당대 역사를 어렵지 않게 소개한다. 19세기 선교 역사 속에서 한국의 기독교 초창기를 목격하는 경험도 신선하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탈기독교적인 사회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역사적 실례를 통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위협으로 꼽히는 세속화의 기원을 확인하고 믿음의 선조들의 대응책을 배워볼 기회를 얻는 셈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