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옥외광고 불법이라면서 정부부터 버젓이…

입력 2018-10-17 19:29 수정 2018-10-17 21:26
경찰청 옥외광고가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터널 교차로에 설치돼 있다. 2007년 개정된 관련 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이 같은 광고물은 불법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터널 교차로 앞에는 경찰청 광고모델인 유명가수의 사진과 함께 ‘학교폭력 신고상담은 국번 없이 117’이라는 문구가 4∼5m 내외 높이의 대형 옥외광고판에 붙어있다. 아래에는 사설 광고업체의 전화번호가 함께 달렸다. 광고판 소유자는 민간 업자다. 해당 업체에 “광고를 하고 싶다”고 문의했더니 “한 달에 80만원을 내면 된다”는 답변이 나왔다. 그러나 이 광고판은 사실 불법 시설물이다.

정부가 스스로 개정한 불법 대형옥외광고물 관련 법령을 정작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부터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스스로 법을 바꿔놓고선 행정편의에 따라 불법을 자행·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고속도로, 일반국도, 지방도로 경계선 및 철도 경계선에서 500m 이내에는 광고물을 설치할 수 없다. 도시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2007년 12월 개정했는데, 이때 공공 목적 광고물이 남발되는 것을 막고 상업광고와의 형평성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공 목적의 광고물 예외조항을 함께 삭제했다. 개정된 법은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뒤 2011년 7월부터 시행됐다. 이와 함께 행정안전부는 도로변 불법 옥외광고물 정비계획을 마련해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정창무 서울대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광고판을 철거하자면서 정부는 왜 가만있느냐는 민간의 불만을 수용한 사례”라며 “비용이 들더라도 정부가 솔선수범하는 의미에서 법이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진복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17일 행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조항에 위배된 불법 옥외광고물은 전국에 545개(지난 6월말 기준)나 된다. 상당수가 지자체 홍보나 방송사 주파수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일부는 민간 광고업자가 소유하고 있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수년째 광고가 계속 올라오고 있는 간판도 많다.

서울의 경우 현재 11개 불법 간판 중 5개를 구청 등 기초자치단체가 이용하고 있다. 4개는 민간광고업자가 사용하고 있으며 2개는 소유자조차 불분명하다. 경기도는 85개(9월말 기준) 불법 광고간판이 있는데 이 역시 대부분이 정부부처나 지자체, 방송사 등이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민간업자가 소유한 불법 광고판에 예산을 들여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광고지주 하나당 철거 비용이 3000만∼4000만원에 달하다보니 철거가 빨리 이뤄지기 어렵다”며 “지자체 등과 협력해 꾸준히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부 박순애 교수는 “바뀐 법과 관련해 정부 부처나 기관끼리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진복 의원은 “불법이 된 광고판에 눈을 감는 정부도 문제지만 불법인줄 알고도 계속해서 이용하는 지자체가 더욱 더 문제가 크다”면서 “각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충분히 철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속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