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뒤엉켜 지낸다. 이야기들은 서로 대결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사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써나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과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 그리고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며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길 원치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배설물처럼 버린다.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왔던 모든 것이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빌 3:8∼9, 새번역)
사도 바울은 세상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만을 바랐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이다.
초기 선교사가 세운 서울의 한 교회에는 많은 양반들이 모였다고 한다. 그런데 백정이 출석하면서 양반은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양반들이 다니는 교회가 생겨났다. 다른 곳도 아닌 교회가 신분 때문에 갈라졌으니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양반의 신분만 고집하는 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앙이란 자기를 비우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과정이다. 그러나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모실 공간이 있을 리가 없다. 나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찬송가 94장은 노래한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찬송의 1절은 세상의 부귀와 예수님을 바꿀 수 없고, 2절은 세상의 명예와 예수님을 바꿀 수 없으며, 3절은 세상의 행복과 예수님을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찬송을 작곡한 죠지 쉬아는 세계를 돌며 찬양과 간증으로 전도를 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 후에 굵은 베이스 음성으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불렀다. 수많은 회중의 끝없는 박수에 쉬아는 고백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갈채도 예수님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되는 것,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던 바울의 이야기(스토리)는 이후 세상의 역사(히스토리)가 됐다. 이 가을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는 삶,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 그 삶의 이야기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되기를 기도한다.
박노훈 (신촌성결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신앙 스토리, 히스토리가 되다
입력 2018-10-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