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쇄신? 말처럼 쉽겠나” 한국당이 더 화려했던 인적 쇄신의 역사
입력 2018-10-20 04:01
자유한국당이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구성을 마무리하고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여야 정치권도 비록 전국 단위의 선거가 1년 반이나 남았지만 조강특위가 한국당 쇄신의 가장 큰 과제로 꼽히는 ‘인적 쇄신’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조강특위에서 바로 총선 공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이뤄지는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 교체는 총선 공천과도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한국당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게 당 안팎의 여론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당 주변에서는 “인적 쇄신이 말처럼 쉽게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들도 많다. 일각에서는 “인적 쇄신이라는 게 꼭 많이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취임 초반 “우리나라만큼 인적 청산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인적 쇄신의 역사는 한국당이 화려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부터 총선 공천 때마다 30%를 상회하는 현역 의원들을 교체해 왔다.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의 36.4%를, 18대 총선에서 39.0%를 각각 교체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도 19대 총선에서 41.7%란 기록적인 현역 교체율을 선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들은 20%대의 현역 의원을 교체하는 데 그쳤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27.7%,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22.8%,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27.0%의 현역 의원을 각각 교체했다.
인적 쇄신 비율이 높았던 보수정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른 17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18대, 19대 총선에서 연이어 원내 1당 자리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궤멸 위기’라고 불렸던 17대 총선에서도 100석이 넘는 의석(121석)을 지켜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쇄신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질
하지만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는 현역 의원의 37.6%를 교체하고도 29.1%를 교체한 민주당에 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평론가는 19일 “당시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로부터 전권을 받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만년 운동권’ 이미지를 벗기 위해 중진들도 예외 없이 과감한 컷오프를 단행한 반면, 새누리당은 많은 현역을 교체하면서도 ‘진박(진실한 친박) 공천’ ‘옥새파동’ 등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만 연출한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즉 인적 쇄신의 규모보다는 쇄신의 질(質)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인적 쇄신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당 전신 정당들의 높은 현역 교체율을 인적 쇄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현역 교체는 대부분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계파 갈등에 의한 (상대 계파 죽이기식) 교체에 불과했다”며 “한국당이 또다시 계파에 의한 인적 쇄신을 한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당의 인적 쇄신과 관련해 한목소리로 “과거와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 소장은 “한국당이 보수 정당으로서 기본적인 신뢰를 회복하려면 적어도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모두 이행한 사람들을 기용해야 한다. 이 기준만 적용해도 많은 현역들이 교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탄핵 후유증이 남아 있는 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이전과 같아서는 안 된다. ‘혁신적이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도 인적 쇄신 불가피
한국당의 쇄신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민주당도 인적 쇄신이라는 과제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해찬 대표가 ‘20년 집권’을 공언한 상황이지만 다음 총선에서 패할 경우 정권재창출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여당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할 만한 차기 대권주자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과거에 비해 민주당의 인적 쇄신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믿고 쇄신 노력을 게을리하는 모양새로 비칠 경우 얼마든지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소장도 “민주당의 최근 연이은 선거 승리는 문 대통령 후광효과와 새누리당의 몰락에 힘입은 측면이 크지, 민주당이 쇄신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 대표처럼 총선이 가까워질 때쯤 다선 의원들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게끔 자발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선 이형민 심우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