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금융산업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이 만나 탄생한 핀테크는 강력한 돌풍을 일으켰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과 더불어 은행은 물론 증권·자산운용, 카드, 보험 등에 이르기까지 ‘핀테크 열풍’이 거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지만 세계 수준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다. 전자상거래업체로 출발해 온라인 결제, 금융상품 개발·판매로 영역을 확장한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한국판 알리바바’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온라인 쇼핑몰 ‘야후쇼핑’에서 옷을 파는 40대 일본 여성 A씨는 최근 재팬넷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대출 신청을 하자마자 요청 금액인 70만엔(약 700만원)을 계좌로 받았다. ‘초스피드 대출’을 가능하게 만든 건 인공지능(AI)을 가미한 핀테크다. 재팬넷은행이 야후쇼핑으로부터 지난 10년간 A씨의 월 판매액 데이터를 받은 뒤 AI가 이를 분석해 변제 능력이 있다고 ‘오케이’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은행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과 손잡고 ‘데이터 대출’에 뛰어든 사례다. 이런 핀테크는 일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를 이끄는 대표적 핀테크 혁신 사례로는 덴마크 최대 상업은행 ‘단스케뱅크’가 꼽힌다. 단스케뱅크는 5년 전 모바일 결제시스템 ‘모바일 페이’를 도입했는데, 덴마크 인구(약 560만명)의 60% 이상이 이용한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90% 이상이 모바일 페이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덴마크에선 노숙자가 동전바구니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적선을 부탁하고, 교회 헌금을 모바일 페이로 한다.
중국에선 ‘핀테크 빅뱅’이 벌어지고 있다. 알리바바의 자회사로 온라인 금융·결제서비스를 하는 알리페이는 선두주자다. 전 세계 이용자가 9억명을 돌파했다. 2004년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제는 세계 최대 모바일 결제서비스 업체로 올라섰다. 가게, 식당뿐 아니라 노점에서도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사먹고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를 통해 모바일 결제를 한다. 심지어 ‘거지도 알리페이로 구걸한다’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다. 중국의 핀테크 산업은 모바일 결제를 넘어 송금, 환전, 담보·신용 대출, 신용평가, 자산운용 등 금융 전반에 걸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핀테크 도입률(온라인 이용자 중 최근 6개월 내에 2가지 이상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의 비중)에서 중국은 압도적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Y)의 ‘주요 국가의 핀테크 도입률’에 따르면 중국은 69%(2017년 기준)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32%로 조사대상국 평균(33%)보다 낮았다. 종합 회계·컨설팅업체 삼정KPMG가 조사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현황에서도 중국은 8곳을 보유하고 있다. 1위는 미국으로 19곳을 두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가운데 단 하나만 있다. 이게 한국 핀테크산업의 현주소다.
ICT산업에서 눈부신 도약을 이뤄낸 한국이 정작 핀테크산업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규제 그물망’을 가장 먼저 꼽는다. 박창욱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사무부국장은 16일 “기업들의 진입 단계부터 기업 활동, 소비자 보호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규제 때문에 한국의 핀테크산업의 발전이 더딘 상황”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삼정KPMG는 최근 ‘국내 핀테크 산업 규제 및 정책방향 리뷰’를 발표하고 ‘규제 트라이앵글’이 핀테크 산업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전 규제’, 정해진 사업 영역이 아니면 활동 자체를 막는 ‘포지티브 규제’, 인증 기준 등이 아예 없는 ‘규제 인프라 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규제 완화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저항 세력도 걸림돌이다. 기존 업계의 기득권, 변화와 책임이 부담스러운 ‘복지부동’ 공무원 조직 등이다.
중국은 한국과 정반대다. 중국 정부는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해 사전 규제가 아닌 사후 규제를 도입했다.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적 금지사항만 두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택했다. 안 되는 것을 제외하고 다 해도 되는 ‘열린 규제’인 것이다.
서봉교 동덕여대 교수는 이달 초 ‘알리바바의 성공을 이끈 중국 규제 완화의 2가지 특징’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서 교수는 보고서에서 중국 규제 완화의 특징으로 ‘유연한 규제 방식’ ‘시장진입 제한 최소화’를 지목했다. 알리바바는 이런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온라인 결제서비스를 시작으로 대출중개, 신용평가, 온라인펀드·보험 판매 등으로 사업 분야를 끝없이 확장할 수 있었다. 서 교수는 “사전 규제, 포지티브 규제를 뼈대로 하는 한국 상황에서 신기술이나 신개념의 금융서비스 도입은 현재로선 어렵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금융의 경쟁력을 얻으려면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중국은 거지도 ‘알리페이 구걸’ 하는데, 규제 그물망에 막힌 한국 핀테크
입력 2018-10-1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