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갑질 못 참아” 직권남용 고소 급증

입력 2018-10-17 04:01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의 집 마당에 옆 빌라 건물의 공공하수관이 매립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알고 보니 관할구청이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빌라 건축주에게 공사를 허용했더라”며 “담당 공무원을 직권남용으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B씨는 국가의 학교 지원 예산이 다른 대학보다 확연히 적은 것을 알고 2016년 말 교육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재항고했다.

공무원이 직권남용으로 고소·고발을 당하는 경우가 지난 8월 기준 1만건을 돌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있었던 2016년부터 해마다 수천건가량이 늘고 있다. 촛불 혁명을 경험하고 두 전직 대통령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서는 것을 지켜본 시민들이 ‘공무원 갑질’을 더 이상 참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적 이해 없이 ‘트집 잡기’ 성격의 민원을 고소·고발로 남발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진복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최근 3년간 직무 관련 공무원범죄 접수 및 처리 현황’ 자료를 보면 공무원이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소·고발당한 건이 2016년 6564건에서 지난해 9802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8월 말까지 1만208건 고소·고발이 접수됐다. 2년8개월간 56%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공무원이 허위공문서 혐의로 고소당한 건은 단 16%가 늘었고 뇌물 고소 건은 오히려 29% 줄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신분을 이용해 다른 사람이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했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적용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촛불 정권’ 출범 이후 정치 효능감을 느낀 국민이 더 이상 불합리한 대접을 참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은 2016년 말 직접 거리에 나와 부패한 공무원들을 촛불로 응징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이후에도 본인이 공무원에게서 적절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적극적 행동에 나서려고 한다. 이를 ‘체화된 지식’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는 최순실씨를 보며 직권남용죄의 존재를 알게 됐다. 국정농단 사태로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검사들도 직권남용죄로 고소당한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의식이 갑질 문제 논란, 김영란법 제정 등을 거치면서 더욱 극대화된 영향”이라고 봤다.

공무원의 일 처리가 맘에 들지 않자 ‘생떼쓰기’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직권남용 고소가 검찰 기소까지 간 사례는 2016년 32건, 지난해 29건, 지난 8월 기준 18건에 그쳤다. 설 교수는 “기소율이 0.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무혐의 고소 건이 많다는 것”라며 “‘안 되더라도 일단 걸어보자’며 고소하는 악성 민원인들이 증가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권남용죄는 상사의 잘못된 지시로부터 부하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 공무원을 보호하는 형태를 갖춘다”며 “미국처럼 ‘직권’ 포함 여부와 상관없이 공무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복 의원은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직권남용에 대한 백서를 만들거나 공무원 교육을 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