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세심판원, 대형 회계법인의 무자격 대리행위 ‘방조’

입력 2018-10-16 19:16

조세심판원이 대형 회계법인의 무자격 대리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 해 수백건의 심판부 결정이 행정실 내부검토를 거치면서 ‘재심의’로 결정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심판원이 최근 불거진 행정실 ‘통행세’ 로비 의혹 대책을 마련하면서 비상임재판관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난 8월 A회계법인은 의뢰인인 B기업의 위임장도 없이 대리인을 조세심판정에 세웠다(국민일보 10월 12일자 1·6면 보도 참조). 이 과정에서 조세심판원은 대리인 자격이 없는 회계사를 대형 회계법인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임장 확인조차 없이 심판정에 입장시켰다.

16일 B기업이 조세심판원에 낸 심판 청구서를 보면 위임장엔 A회계법인의 김모 회계사 1명만 대리인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심판정에는 김 회계사 외에 같은 회계법인 소속 정모 회계사가 배석했다. 정 회계사는 김 회계사 대신 의견 진술, 과세관청 주장 등 심판정에서의 모든 대리행위를 행사했다. 그는 자신이 진술한 내용에 대해 심판관들이 질문을 하지 않자 ‘질문이 없는 건 납세자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국민일보 확인 결과, 조세심판원은 정 회계사에 대한 위임장 확인 없이 정 회계사의 명함만 확인했다. 정 회계사는 B기업이 대리인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한 회계사였다. 이에 대해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법무법인과 달리 회계법인은 심판청구서에 대리인을 모두 적시하지 않아도 같은 회계법인 소속이면 명함만 확인하고 출석시키는 것이 관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판정에서의 ‘무권 대리’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회장은 “위임장과 선임계를 내지 않은 법무·세무 대리행위는 위법”이라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조세심판원도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세심판원은 교묘한 설명자료를 내며 사실상 A회계법인을 감싸기도 했다. 조세심판원은 지난 12일 국민일보의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를 내고 “해당 사건 심판청구서에는 A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 OOO이 대리인으로 선임돼 있다”고 공개했다. 정 회계사의 무권 대리 행위를 지적했는데 익명을 활용해 마치 김 회계사가 아니라 정 회계사가 대리인으로 선임된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세심판원은 행정실의 ‘통행세’ 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심판의 공정성을 위해 심판 개시 직전까지 비상임심판관을 비공개하는 방안을 오는 29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조세심판원은 공개적으로 행정실 내부검토 재심결정 건수를 밝힌 적이 없지만 2014년, 2016년,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최소 8건에서 최대 42건의 재심의 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조세심판관은 “로비 의혹의 핵심은 행정실의 불투명한 내부검토 과정인데 애꿎은 비상임심판관을 로비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