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택시요금 올려도 사납금 그대로, 서울시 “올리면 카드대금 안 준다”

입력 2018-10-15 18:21
서울시와 254개 법인택시가 가입된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과 작성한 확약서에는 이를 위반할 경우 카드결제대금을 법인택시에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붉은색 원)이 담겼다.
택시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가 사납금을 올린 법인택시에는 단말기를 통한 카드결제(교통카드 포함) 대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요금인상으로 인한 수익 증가분이 고스란히 택시기사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서울시와 254개 서울 법인택시회사가 합의한 ‘사납금 6개월 동결’ 배경에는 ‘이행확약서’가 작용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이행확약서 문건에 따르면 법인택시 측이 사납금을 인상할 경우 서울시가 카드결제기 관리·정산 업체인 한국스마트카드에 결제대금 ‘지급정지’를 요구한다고 돼 있다. 한국스마트카드는 대신 이 돈을 서울시가 지정한 계좌에 입금하게 된다. 서울시는 이를 받아 택시기사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사납금은 법인택시 회사가 기사에게 차량을 빌려주고 관리하는 명목으로 받는 돈이다. 과거 택시 요금을 인상하면 회사는 곧 사납금을 올려 기사들의 주머니 사정은 요금 인상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확약서에는 ‘서울시가 지정한 계좌에 입금된 금액(지급 정지한 금액)에 대해 소유권, 반환청구권 등 일체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관련 민·형사상 소송이나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법인택시 회사가 반환 조치에 나설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것이다.

서울시가 요금 인상 전 기사 처우 보호 장치를 제도로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는 요금 인상의 큰 틀을 서울시가 마련하고 확정하면 세부 사항은 노사가 합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걸림돌은 사납금이었다. 2013년 요금 인상 당시에도 법인택시 회사들은 일제히 사납금을 올렸다.

이번 조치에는 요금을 올려 택시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서울 택시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는 서울시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 특히 도시교통본부장을 지냈던 윤준병 행정1부시장이 직접 확약서 문구를 고칠 만큼 처우 개선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3년처럼 사업주 배불리기에 그쳤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각 회사는 6개월 동안 사납금을 동결하고, 이후 수입증가분의 80%는 택시기사 월급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때 기준이 되는 수입증가분 역시 노사 합의로 정하지 않고 택시미터기에 장착된 ‘디지털운행기록계’로 수집된 통계를 근거로 삼게 된다. 디지털운행기록계는 주행 거리와 시간, 요금, 탑승횟수 등 모든 택시 데이터가 수집되는 장치로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다.

서울 택시 기본요금은 2013년 10월 2400원에서 3000원으로 600원을 올린 뒤 5년이 넘도록 동결된 상태다. 서울시에 따르면 법인택시기사 월평균 임금은 217만원 수준이다. 서울시가 정한 내년도 생활임금이 시간당 1만148원임을 감안할 때 법인택시기사 근로시간(10.8시간·1일 2교대)과 근무일수(26일 기준)로 따져보면 생활임금(285만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지난 2일 서울시와 택시업계, 종사자, 시민단체 등은 ‘택시 노사민전정 협의체’를 열고 요금 인상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본요금을 현재 3000원에서 4000원으로 1000원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시는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택시 요금은 기본요금과 거리요금(142m당 100원), 시간요금(35초당 100원) 그리고 야간 할증요금(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시는 기본요금 인상폭을 줄이는 대신 시간·거리요금을 늘리거나 그 반대를 고려 중이다.

서울시 택시 요금 인상안이 구체화되자 경기와 인천, 대구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요금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과 경기는 현 기본요금 3000원에서 최대 4000원으로 인상을, 대구는 2800원인 기본요금을 33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시민단체는 택시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인상폭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시민 부담을 덜기 위해 택시요금을 최소폭으로 올리고 인상분은 택시기사 처우 개선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금 인상안은 시의회 의견 청취를 거쳐 물가대책심의위원회, 택시정책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최종 확정된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