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키맨 소환… ‘윗선’ 입 열까

입력 2018-10-16 04:00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검찰에 소환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법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동료와 후배 법관들이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에 처음으로 소환됐다. 임 전 차장 조사 결과에 따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대법관급 ‘윗선’에 대한 수사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환조사가 수사의 분수령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이날 오전 9시30분 임 전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의 피의자로 소환해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2012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차장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재임기 이뤄진 법관 사찰 및 재판 거래 의혹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본다. 특히 검찰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및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처분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청와대 측과 선고 방향을 논의한 정황을 잡고 윗선 지시 여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은 검찰청에 출두하며 기자들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법원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 후배 법관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에 대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대법원이 관련 의혹에 대한 내부 조사를 시작했던 지난해 초부터 ‘키맨’으로 지목됐다. 5년간 사법행정을 사실상 진두지휘해왔고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추진의 실무를 맡았던 게 임 전 차장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첫 압수수색 대상도 임 전 차장이었다. 당시 검찰이 확보한 임 전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 속 8000개의 문서 파일에서 각종 사법농단 정황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검찰이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임종헌의 입’에 달렸다는 시각이 많다. 다만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 및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대법관)의 의혹 연루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협조 수위에 따라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 확보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이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이 낮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판사 출신인 임 전 차장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것으로 보여 검찰 입장에서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