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밥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은 선물로 관심을 전할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문인들은 글이나 책으로 우정을 드러낸다. 근래 사례를 찾아봤다. 얼마 전 나온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삼인)은 30년 지기인 작가 고종석(59)과 시인 황인숙(60)의 대화를 글로 옮긴 책이다.
2005년 언론사 퇴사 후 ‘글쟁이’로 살던 고종석은 6년 전 이맘때 “글쓰기가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하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3년 뒤 다시 글을 쓰게 됐지만 2016년 신영복 선생이 별세했을 때, 그의 책에서 배운 것이 없다고 했다가 SNS에서 뭇매를 맞았고 또 절필했다. 뭔가 까탈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는 고종석의 내심이 궁금한데, 모난 것 하나 없는 ‘고양이 엄마’ 황인숙이 안부를 묻는다. 고종석은 “글을 못 써 우울하다”고 답한다. 이어 “이 친구한테 빚내서 저 친구 빚 갚고, 또 딴 친구에게 빚내서 그 이전 친구 빚 갚는 식으로, 돌려 막기를 하며 겨우 버텨내고 있어”라고 한다. 고종석은 친구 앞이기 때문에 솔직하고 가볍게 속말을 한다. 황인숙은 “너는 아마 트위터로 가장 크게 망한 사람일 거야. 상처 많이 받았지?”라며 친구를 다독이고, 고종석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나의 정직함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오랜 시간 무르익은 우정의 결이 느껴진다.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자 시인인 김민정(42)은 최근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 호에 ‘철규의 감자’란 시를 발표했다. ‘철규가 거창에서 감자를 보냈다 했고/내가 인천에서 감자를 받았다 했다/그 감자의 신묘함이라 하면/철규가 보냈다는 그 감자를/철규도 본 적이 없고/내가 받았다는 그 감자를 나도 본 적이 없는데/우리 서로 그 감자를 두고/별거 아니에요/별거 맞던데 뭐….’
시인 신철규(35)가 농사짓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감자를 보낸 것을 두고 쓴 시다. 신철규는 1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누나(김민정)가 내 첫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을 만들어 준 뒤 자기한테 의지하고 또 친정으로 생각하라고 하더라. 고마운 마음에 감자를 보냈는데 그걸로 시까지 쓸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에세이스트이자 의사인 남궁인(35)은 지난 추석 직전 페이스북에 김민정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연을 올려 화제가 됐다. 김민정이 담낭암 수술을 하고 회복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뒤 쓴 글이었다. 김민정은 “큰 추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강원도 동향에 마흔여섯 동갑내기 소설가인 이기호와 박형서는 소설에 상대를 등장시킨다. 이기호가 지난 6월 낸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거기 수록된 한 단편에서 소설가인 ‘나’는 중고나라 책 판매자가 내 책에 대해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4000원-그룹 1, 2에서 다섯 권 구매 시 무료 증정)”이라고 올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박형서는 4000원이고, 나는 원 플러스 원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라며 분노한다. 아내는 그에게 “그냥 잊고 자. 당신 책이나 박형서 책이나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라고 얘기해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현대문학 윤희영 잡지팀장은 “둘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디스’해서 ‘톰과 제리’라는 인상을 주는데 그건 서로 너무 잘 알고 절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글쟁이들이 우정을 주고받는 방식
입력 2018-10-1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