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의 재취업에는 ‘예우(禮遇)’가 가능한 ‘전관(前官)’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따라붙는 일이 잦다. 경험을 살린 ‘제2의 인생 개척’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공직자의 재취업이 눈총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사외이사’가 꼽힌다. 기업의 현안을 다루는 이사회에 참석할 권한을 지닌 사외이사에 종종 전직 공무원들이 포진한다. 기업은 수천만원의 연봉을 주면서 이들을 모셔온다. 이사회 참석, 중요한 의사결정, 정책적 조언과 함께 ‘가욋일’을 해주면 더 좋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구조에서 사외이사로 재취업을 한 전관은 ‘로비 창구’로 전락하게 된다.
국민일보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14일 공개한 인사혁신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기업의 사외이사 취업을 위해 심사를 받은 공무원은 17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취업 제한 판정을 받은 23명을 제외한 154명이 취업을 허락받았다. 대기업, 중견기업, 금융회사 등 취업 경로는 다양하다. 대기업의 경우 5000만∼7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지급한다.
장·차관 같은 고위공직자만 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의 경우 2013년부터 올해 8월까지 10명이 기업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부처 가운데 검찰청과 외교부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면면을 보면 고위공무원부터 6급 공무원까지 다양하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공무원이 5급 사무관에 임용된다는 걸 감안하면 하위직급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도 기업 사외이사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공직 경험을 살려 민간 기업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 즉 인적자본 확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직자의 사외이사 취업은 긍정적이다. 다만 민간 기업이 사외이사에게 기대하는 역할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기업들은 사외이사에게 갖가지 문제와 관련한 의견 제시 역할도 맡긴다. 국세청 출신이라면 세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원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조언’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을 무시하기 힘들다. 기업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민간 기업은 사외이사들에게 ‘예스 맨’(무조건 예라고 말하는 사람)인 상임이사들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며 “때문에 사외이사들은 밥값을 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대안을 열심히 찾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제의 왜곡’을 고쳐야 한다고 꼬집는다. 사외이사의 주된 임무인 ‘견제와 감시’가 사라진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현행 상법은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기업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게끔 규정한다. 하지만 사외이사를 뽑는 권한을 지닌 이는 여전히 기업 총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상법 개정으로 지배주주의 사외이사 임명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5년간 154명, 전직 공무원들 기업 사외이사로 대거 포진
입력 2018-10-15 04:04